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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바논 베이르투 항구서 대규모 폭발 발생

기사승인 2020.09.08  14:2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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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견된 ‘인재’(人災) 정황이 드러나면서 반정부 시위 거세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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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4일(이하 현지시간) 레바논의 수도 베이루트의 항구에서 대규모 폭발이 발생했다.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이날 발생한 2건의 폭발은 베이루트를 뒤흔들었다. 건물들은 손상됐고 폭발로 부상을 입은 사람들도 상당수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종서 기자 jslee@

이번 폭발은 베이루트 항구 근처 폭죽 창고에서 화재가 발생한 후 일어난 것으로 전해졌다. 첫 번째 폭발은 항구의 창고에서 시작된 것으로 보이지만 아직 폭발의 원인은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두 번째 폭발은 사드 하리리 전 총리의 자택 근처에서 발생했다. 폭발은 베이루트 항구의 창고에 6년 넘게 방치돼 있던 화학물질 질산암모늄 2750t이 터지면서 발생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번 참사로 인한 사망자 수가 171명으로 늘어났다. 아나돌루통신, 신화통신 등에 따르면 하마드 하산 레바논 보건장관은 8월11일 세계보건기구(WHO) 긴급 대응 담당 관계자와 회의를 마친 뒤 이 같이 밝혔다. 하산 장관은 “실종자가 30~40명”이라고 밝혔다. 부상자에 관해서는 “약 1500명이 정교한 치료를 받아야 한다"며 "120명은 여전히 중환자실에 있다”고 전했다.

베이루트항서 보관 중이던 질산암모늄 2750t 폭발
미셸 아운 레바논 대통령이 대규모 폭발 사고가 발생한 수도 베이루트에 2주간 비상사태를 선포했다. 아운 대통령은 이날 중 긴급 국무회의 소집도 예고했다. 레바논 대통령실은 지난 8월5일 공식 트위터 계정에 “아운 대통령이 베이루트에 2주간 비상사태를 선포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레바논군이 베이루트와 인근 피해지역의 보안 유지 임무를 맡게 됐다. 국영 NNA통신과 데일리스타 등 레바논 현지 매체는 “비상사태 선포는 최고방위원회(Higher Defence Council)의 권고에 따른 것”이라고 부연했다. 아운 대통령이 긴급 소집한 최고방위위원회는 베이루트를 재난지역 지정할 것과 2주간 비상사태 선포, 군당국에 치안권 이양 등을 권고했다. 이 위원회는 폭발 사고 전담 조사반을 구성해 5일 이내 사고 원인을 발표할 것과 책임자에게 최고 형벌을 내릴 것도 권고했다. 알자지라는 폭발사고의 원인은 아직 알려지지 않았지만 현지 관료들은 베이루트항에 보관 중이던 질산암모늄을 원인으로 꼽고 있다고 전했다. 최고방위위원회 위원장인 아바스 이브라힘이 8월4일 긴급회의 직후 기자들에게 “아프리카로 갈 예정이던 질산암모늄 2700t이 폭발했다”고 발언하기도 했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레바논 대통령실은 “하산 디아브 총리가 ‘(고위험 폭발물인) 질산암모늄 2750t 가량이 베이루트항 창고에 지난 2014년부터 6년 동안 아무런 안전초치 없이 보관돼 있다는 점을 용납할 수 없다. 책임자를 찾아 최고 형벌을 내릴 것’이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디아브 총리도 “이번 재앙에 대한 책임을 묻지 않고 내버려두지 않을 것이라는 것과 이번 재앙에 책임이 있는 사람들은 그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라는 점을 나는 약속한다”며 “이는 순교자와 부상자에게 하는 맹세다. 이는 국가적인 약속”이라고 선언했다. 다만 디아브 총리는 베이루트 항구 주변에 질산암모늄이 보관돼 있던 경위도 조사해 발표하겠다고 약속했지만 경위 조사보다 사망자 수습과 부상자 치료가 우선이라고 했다. 한편, 이번 폭발사고로 베이루트항에 보관돼 있던 밀 등 식량도 상당부분 훼손돼 베이루트의 밀 공급 등이 제한될 수 있다고 현지 매체들은 전했다. 아운 대통령은 희생자 지원과 사고 수습을 위한 긴급 예산 편성을 지시했다.

무장단체 헤즈볼라, 폭발사고 관련 의혹 부인
레바논의 이슬람 시아파 무장단체 헤즈볼라가 베이루트 대형 폭발사고와 관련돼 있다는 의혹을 부인했다. 8월7일 AFP·로이터통신에 따르면 헤즈볼라 지도자인 사예드 하산 나스랄라는 이날 TV연설을 통해 “베이루트 항구에 헤즈볼라의 무기 창고나 미사일, 소총, 폭탄, 질산암모늄 따위는 전혀 없다”고 밝혔다. 사고 직후부터 일부 정치세력은 헤즈볼라의 무기가 폭발과 관련됐다 것이라는 의혹을 제기했지만 나스랄라는 “그들은 선입견을 갖고 있다”며 “어떤 사건이 발생하면 이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부작용이 나오기 마련”이라고 일축했다. 나스랄라는 이번 폭발을 “큰 비극이자 인도적 재앙”이라고 부르며 대규모 대응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나스랄라는 “폭격이든 고의적 (외부) 행동이든 질산암모늄이 이런 식으로 항구에 수년 간 보관돼 있었다는 것이 밝혀진다면 이 사건은 일부 관리소홀과 부패가 원인이라는 것을 명백히 의미한다”고 말했다.

나스랄라는 미셸 아운 레바논 대통령이 이번 폭발에 대한 국제조사를 거부한 가운데 “사람들에게 가장 신뢰받고 있는 레바논 군부가 해당 사고를 조사해 결과를 발표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나스랄라는 “레바논 국가와 정치인들은 조사를 해봤자 결론을 내리지 못한다”며 “이는 국가를 재건할 희망이 없다는 것을 뜻한다”고 비판했다. 나스랄라는 특히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의 레바논 방문을 “가장 의미 있는 일”로 꼽으며 “우리는 레바논에 대한 어떤 원조나 공감도 긍정적으로 본다”고 덧붙였다. 헤즈볼라는 1975~1990년 레바논 내전 이후 무장을 해제하지 않은 유일한 단체로 2000년까지 레바논 남부를 점령했던 이스라엘과 전쟁을 벌였었다. 현재 헤즈볼라는 이웃국가인 시리아의 바샤르 알아사드 대통령의 동맹으로 정부군을 돕고 있다.

질산암모늄 2750t 수년 간 관리 없이 방치돼
레바논 수도 베이루트에서 발생한 대규모 폭발의 원인이 항구 창고에 수년간 방치된 고위험성 폭발물 질산암모늄이라는 분석이 잇따라 제기되면서 레바논 시민의 분노가 당국을 향하고 있다. 경제난과 부패 등으로 시민의 불만이 이미 극에 달한 상황에서 이번 폭발이 새로운 촉매로 떠오르는 모양새다. 질산암모늄은 일반적으로 비료 용도로 쓰이지만 폭탄 제조 등 군사 목적으로도 활용 가능하다. 실제 1995년 미국 오클라호마시티 테러 등에서 질산암모늄이 활용된 바 있다. 보관과 사용 과정에서 고도의 안전 조치가 필요하지만 현재 보도에 따르면 레바논 당국은 민가와 인접한 항구에 이를 방치했다. 8월5일 레바논 알줌후리야와 워싱턴포스트(WP), 알자지라, 영국 아랍전문매체 알알라비 등에 따르면 베이루트항 항만 창고는 수만명이 오가고, 국가 주요시설인 곡물 저장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방역물자 저장고, 값을 매길 수 없는 문화예술 유적이 자리잡고 있는 지역에 위치해 있다. 하지만 레바논 당국이 지난 2013년 11월 또는 2014년 무렵 아프리카 모잠비크로 향하던 몰도바 국적 선박에서 압류한 질산암모늄 2750t(TNT 1300t 규모)은 항만 창고에 수년간 뚜렷한 관리 없이 방치됐다. 레바논 보안당국이 폭발 한달전 질산암모늄의 위험성을 지적하면서 노후화된 시설을 즉각 보수해야 한다고 경고해야할 정도였다.

보안당국의 경고에 앞서도 질산암모늄 이전 요청이 있었지만 사법부에 의해 묵살됐다. 폭발 이후에도 레바논 당국은 뚜렷한 행정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폭발 원인을 밝히지 못하는 것은 물론 질산암모늄 폭발로 인한 유해가스 배출에도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 부상자들도 사실상 방치돼 현지 매체들은 ‘아마겟돈’을 방불케 하는 상황이 의료시설에서 벌어지고 있다고 전하고 있다. 폭발로 의료시설과 의료진이 피해를 입고 피해를 입은 의료시설도 부상자 대응 이외 업무를 할 수 없는 상황에 놓이면서 베이루트 전역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검사도 중단됐다. 내전과 부패, 시리아 난민 유입 등으로 사실상 경제가 파탄난 상황에서 코로나19 확산을 억제하지 못하면 레바논 수입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관광사업 재개가 어려워지면 경제 회복도 기대하기 어려워진다. 레바논 산업협회 관계자는 WP에 “실패한 국가를 갖는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레바논 시민은 끔찍한 현장을 직접 목격하게 됐다”며 “단순히 정부가 부패한 것뿐만 아니라 국력이 약하고 정부가 통제력을 갖고 있지 않다는 것 등의 문제가 재앙적으로 합쳐졌다”고 토로했다. WP는 이번 폭발 사고의 경위와 책임을 묻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면서 폭발로 인한 충격이 분노로 변해 반정부 시위가 다시금 힘을 얻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알자지라도 이번 폭발은 이미 좌절에 빠진 레바논인을 더욱 분노하게 만들었다고 전했다.

레바논에서는 지난해 정부 부패와 실정을 규탄하는 대규모 시위가 벌어져 당시 총리였던 사드 하리리가 물러난 바 있다. 지난 1월 하산 디아브 내각이 출범했지만 코로나19와 금융위기로 통화 가치가 급락하고 식량과 생필품 가격이 치솟는 등 경제난이 고조되자 지난 4월부터 다시 시위가 벌어지고 있다. 지난해 9월부터 올해 5월까지 주요 식량의 가격이 109% 상승한 가운데 이번 폭발로 레바논내 곡물 상당량이 저장된 저장고가 폭발하면서 식량난도 예상된다. 유엔 산하 식량농업기구(FAO)는 폭발 이후 성명을 내어 레바논에서 밀가루 등 식량 공급난이 발생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레바논 당국은 밀가루를 제한 공급하기로 했다. 더구나 이번 폭발로 사고 현장 인근에 거주하던 2만5000명 이상이 보금자리를 잃고 거리로 내몰렸다. 베이루트당국은 피해 규모가 50억달러 이상일 것이라고 추정하고 있다.

분노한 시민들 거리로 나와 반정부 시위 펼쳐
레바논 보안 당국이 지난 7월 베이루트 항구에 저장돼 있던 질산암모늄 2750톤이 폭발할 경우 수도가 파괴될 수 있다며 총리와 대통령에게 경고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8월10일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국가안보총국(NSC)의 보고서에는 지난 7월20일 미셸 아운 레바논 대통령과 하산 디아브 레바논 총리에게 보낸 친서에 폭발 가능성을 경고한 내용이 포함됐다. 이같은 경고는 지난 1월 시작된 사법조사 결과로 요약문에 담겼다. 이 요약문을 작성한 익명의 관리는 인터뷰에서 “질산암모늄은 도난을 당할 경우 테러 공격에 사용될 수 있는 위험이 있는 화학 물질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수사 막바지에 가산 오웨이다트 검찰총장이 이 요약문을 토대로 최종 보고서를 작성했고, 국가안전보장총국이 총리와 대통령에게 보냈다”고 말했다. 이 관리는 “이 보고서에서 질산암모늄이 폭발하면 베이루트 전체가 파괴될 수 있다고 경고했었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정부는 아무 조치도 취하지 않았고, 결국 경고는 현실로 나타나 지난 8월4일 6년간 창고에 보관돼 있던 질산암모늄 2750톤에 불이 붙은 것이 대규모 폭발로 이어졌다. 레바논 수도 베이루트에서 수천명의 사상자를 낸 대형 폭발사고가 인재(人災)라는 정황이 속속 드러나자 분노한 시민들이 거리로 나와 반정부 시위를 펼치고 있다. 영국 BBC에 따르면, 8월6일 거리에 나온 시위대가 최루탄 등으로 무장한 레바논 안보군과 충돌하면서 혼란이 빚어졌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이날 외국 정상으로는 처음으로 베이루트를 방문한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사고 피해 현장을 둘러보는 자리에서 잔해를 치우던 자원봉사자 수십명이 “국민은 정권 퇴진을 원한다” “미셸 아운 레바논 대통령은 테러리스트”라고 외치기도 했다. 레바논 관영 언론은 사고 조사 과정에서 16명이 체포됐다고 전했다. 또한 베이루트항 질산암모늄 보관 및 관리와 관련된 관리들은 모두 가택연금에 처해졌다. FT에 따르면, 레바논 총리실 대변인은 세관 관리부터 판사, 전직 장관들까지 질산암모늄이 보관돼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던 관료들 모두에게 가택연금이 내려졌다고 전했다. 하지만 레바논 정부가 자체 조사로 사고의 진상을 제대로 파악하고 책임자를 처벌할 수 없을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인권단체들은 국제 전문가가 포함된 독립 조사가 필요하다고 촉구했고, 마크롱 대통령은 투명한 조사 과정을 요구했다. 마크롱 대통령이 누구보다 먼저 베이루트 사고 현장으로 달려간 이유는 레바논이 프랑스 보호령이었던 역사가 있기 때문이다. 마크롱 대통령은 베이루트에서 “개혁하지 않으면 레바논은 침몰할 것”이라고 촉구하며, 정권 퇴진을 외치는 시민들에게 “재난 원조 기금이 부패한 이들의 손에 들어가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그는 “프랑스 정부가 레바논의 부패 청산과 국가 안정을 위해 수년 간 요구해 온 정치 및 경제 개혁을 위해 레바논 정치 지도자들과 진지한 대화를 나누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부패와 맞서 싸우기 위한 강력한 정치적 의지와 중앙은행 및 금융 시스템의 투명한 감사가 필요하다”고 촉구했다. 프랑스 대통령이 레바논 지도자 대신 국민들을 달래고 변화를 약속한 셈이다.

외신들은 레바논 국민들은 자국 지도자들에 대한 반발이 워낙 강해, 과거 지배를 받았던 타국 지도자를 더욱 반겼다고 전했다. 시민들은 이번 사고의 근본적 원인이 경제 붕괴와 국가 기능 마비를 초래한 집권 엘리트층의 고질적 부패와 실정에 있다고 보고 분노하고 있다. 레바논 정부 실패의 원인은 1975~1990년 내전 이후 정치적 혼란 속에서 수립된 각 종파 간 권력 분점 시스템에 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하고 있다. 지도자 1명의 통치를 받는 대신 19개 정파와 기독교 및 이슬람교가 동등한 권력을 나눠 가진 채로 국가를 운영하다 보니 집권 엘리트층이 모조리 권력을 무기한 보장받는 ‘고인 물’이 될 수밖에 없어 국가 이익보다는 사익을 추구하게 됐다는 설명이다. 레바논 경제는 내전 종식 후 정치 실패로 파탄에 이르렀다. 10년 전까지만 해도 8~9%에 이르던 연간 경제성장률은 지난해 -5.6%까지 떨어졌다. 사고 이전부터 레바논의 이처럼 경제 위기가 심화되는 와중에도 국제기구들은 재정 지원을 꺼려 왔다. 정부 부패와 실정으로 개혁 가능성이 요원한 데다, 친이란 성향의 시아파 무장정파인 헤즈볼라가 적지 않은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레바논 국가 부채는 850억달러로 국내총생산(GDP)의 150%에 달했다. 국가부도 위험이 높아짐에 따라 통화가치가 가파르게 떨어져 물가는 급등했다. 정전이 일상이고 의료 인프라는 열악한 데다 안전한 식수마저 부족한 지경이 돼 민생고가 극에 달했다. 영국 왕립국제문제연구소 ‘채텀하우스’의 중동 전문가인 리나 카티브는 FT에 “현재 레바논 경제 위기는 정치 시스템 때문”이라며 “레바논은 재건 비용을 감당하거나 경제적 자립을 달성할 능력이 없다”고 말했다. 다만 “이번 사고를 계기로 국제 원조를 빌미로 개혁을 강제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길 수도 있다”며 “국민들의 분노가 거세지고 있는 만큼 지도부는 어느 정도의 개혁을 이행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마르완 아부드 베이루트 시장은 이번 사고의 피해액이 30억~50억달러가 될 것이라 예상했는데, 라올 네흐메 레바논 경제장관은 국제통화기금(IMF)과의 협력만이 유일한 해결책이라고 말했다.

레바논 내각, 베이루트 폭발 사고로 총사퇴
지난 8월10일 하산 디아브 레바논 총리가 자리에서 물러나겠다고 발표했다. 또 자신을 포함해 내각도 총사퇴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8월4일 수도 베이루트에서 발생한 대규모 폭발 사고로 시민들이 연일 반(反)정부 시위를 펼치는 등 정부에 책임을 묻고 나선데 따른 것이다. 올해 1월 총리직에 오른 뒤 불과 7개월 만이다. 디아브 총리는 이날 대국민 TV연설에서 “베이루트 폭발은 고질적인 부패의 결과다. 부패의 구조가 국가 자체보다 크고, 국가는 이 부패의 구조에 종속돼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우리는 한 발짝 물러서서 변화를 위한 싸움에 국민과 함께 하겠다”며 사퇴 이유를 밝혔다. 앞서 레바논에서는 폭발 참사에 책임을 지겠다며 환경장관과 공보장관, 법무부 장관이 사임한 바 있다. 디아브 총리는 지난해 10월 정권 무능으로 말미암은 경제 위기에 반발하는 대규모 시위로 사드 하리리 전 총리가 사퇴한 뒤 올해 1월 총리직에 올랐다. 미셸 아운 레바논 대통령 집무실은 성명을 내고 총리의 사임을 받아들였다고 밝혔다.

디아브 총리는 차기 정부를 구성할 때까지 임시 정부 체제로 업무를 계속할 예정이다. 디아브 총리를 자리에서 끌어내린 것은 시민들의 분노다. 사고 경위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아운 레바논 대통령과 디아브 총리는 지난 달 베이루트 항구에 쌓인 폭발물질의 위험성에 대해 이미 보고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소식이 전해진 뒤 시민들의 분노는 정부를 향했다. 대형 폭발 사고가 일어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서도 예방 조치를 취하지 않아 참사를 막지 못했기 때문이다. 레바논 국가안보국 보고서에 따르면 베이루트 항구 및 세관 관리자들은 레바논 법원에 위험물질 처리를 수차례 촉구했다. 이에 사법당국은 베이루트 항구의 질산암모늄을 즉시 안전하게 보호해야 한다고 권고했고, 관련 내용이 담긴 보고서가 대통령과 총리에게 전달됐다. 서한 작성에 관여한 관계자는 “이 물질이 폭발하면 테러 공격에 쓰일 위험이 있었다”며 “폭발하면 베이루트가 파괴될 수 있다고 (대통령과 총리에게) 경고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아운 대통령이 폭발 물질의 위험성을 몰랐다고 해명하면서 시민들의 분노는 더욱 거세졌다. 반정부 시위대는 대통령도 자리에서 물러나야 한다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시민들은 의회 주변에서 대통령의 사진을 불태우며 정권 퇴진을 요구하고 있다. 시위에 참여한 아흐메드 알 모하메드는 “내각 사퇴는 충분하지 않다. 우리는 대통령과 국회의장을 끌어내려야 한다”고 말했다.

국제사회, 레바논에 2억5000만유로 지원 약속
국제사회가 초대형 폭발로 수도가 초토화된 레바논에 2억5000만유로(약 3500억9000만원)를 지원하기로 했다. 하지만 프랑스가 주도한 온라인 기부 정상회담(donor summit)에서는 동시에 개혁이 이뤄져야 한다는 요구가 나왔다. BBC에 따르면 이번 대폭발 사건 이후 레바논에선 정부의 부패와 무능에 대한 분노가 들끓고 있다. 베이루트에선 이틀째 반정부 시위가 일어났고, 시위대와 경찰의 충돌로 경찰 1명이 사망하고 170여명이 다친 것으로 알려졌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주도한 8월9일 기부 회담에서 15명의 국가정상들은 지원을 약속했다. 이들은 성명을 내고 “지원은 시의적절하고, 충분해야 하며 레바논 국민들의 필요에 부합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최대의 효율성과 투명성을 갖고 레바논 국민들에게 직접 전달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참가국들은 레바논 정부가 국민들의 변화된 요구에 귀를 기울이며, 레바논의 장기 회복을 도울 준비가 돼 있다고 밝혔다.

프랑스 대통령실은 이번 회담에선 총 2억5270만유로의 지원금을 모았다고 밝혔다. 이번 폭발에 따른 손실액은 최대 150억달러(약 17조8095억원)로 추정된다. 레바논은 1975~1990년 내전 이후 최악의 경제 위기에 놓여 있으며, 이로 인해 일상적 정전과 안전한 식수 부족, 제한된 공공의료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통화는 붕괴했고, 지난 3월에는 디폴트(채무불이행) 상태에 빠졌다. 국제통화기금(IMF)과의 100억달러 지원 협상은 중단된 상태다. 이뿐 아니라 정부 내에선 정책 실패를 비판하는 장관들은 옷을 벗고 있다. 다미아노스 카타르 환경부 장관은 “여러 기회를 날려버린 무익한 정권”이라고 비난하며, 두번째로 내각을 떠났다. 이에 앞서 아날 압델 사마드 정보부 장관은 개혁 실패와 “베이루트 재앙”을 언급하며 퇴진했다.

마크롱 대통령은 프랑스 남부에 있는 여름 별장에서 연설하면서 이번 참사가 어떻게 발생했는지에 대해 “공정하고 신뢰할 수 있으며 독립적인 조사”를 촉구했다. 하지만 미셸 아운 대통령은 국제 조사를 배제했다. 마크롱 대통령은 레바논 시위를 언급하며 “레바논 국민들이 베이루트 거리에서 지금 현재 합법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열망에 대응하는 것”은 레바논 정부의 몫이라고 말했다. 그렇지만 “레바논의 미래는 위태롭다”며 폭력과 혼란이 만연해선 안된다고 덧붙였다. 트럼프 대통령 역시 정상회담 참여해 투명한 조사를 촉구하며, 미국은 지원에 나설 것이라고 밝혔다. 백악관은 “대통령은 레바논에 평정을 촉구했으며, 투명성과 개혁, 책임에 대한 평화적 시위대의 합법적 요구를 인정했다”고 전했다. 이날 회담에는 유럽연합(EU)과 영국, 독일, 프랑스, 스페인, 스위스, 미국, 카타르, 쿠웨이트, 덴마크, 노르웨이 등이 참여했다. NM

이종서 기자 jslee@newsmaker.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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