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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태 허용하는 형법·모자보건법 개정안 입법예고

기사승인 2020.11.03  01:4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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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낙태법 개정안에 정치권과 시민사회 엇갈린 반응 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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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임신 14주까지 낙태를 허용하면서 낙태죄 자체는 유지하는 내용의 법률 개정안을 마련했다. 헌법재판소가 지난해 4월 낙태죄 조항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리면서, 올해 12월 31일까지 개정법 입법시간을 정한 데 따른 것이다.

장정미 기자 haiyap@

지난 10월7일 법무부와 보건복지부,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입법예고한 형법 및 모자보건법 개정안에 따르면 임신 14주 이내에는 어떤 경우에든 본인 결정에 따라 낙태를 할 수 있게 됐다. 성범죄나 건강 등 특정 사유가 있을 경우 24주까지도 낙태가 가능하다.

국민 절반 이상은 낙태법 개정안에 찬성
우리 국민 절반 이상이 낙태(임신중단)죄를 유지하면서 제한적으로 낙태를 허용해야 한다는 정부의 낙태법 개정안 추진에 찬성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10월11일 엠브레인퍼블릭·케이스탯리서치·코리아리서치·한국리서치 등 여론조사 전문업체 4개사가 10월8일부터 10일까지 전국 만 18세 이상 남녀 1009명을 대상으로 낙태법 개정에 대한 입장을 묻자 응답자의 56%가 낙태법 개정안에 찬성한다고 답했다. 다음으로 ‘임신 기간과 상관없이 낙태를 허용해야 한다’는 의견이 21%, ‘임신기간과 상관없이 낙태를 허용하면 안 된다’는 의견이 19%로 뒤를 이었다. 성별, 연령별, 이념성향별 등 모든 분류에서 ‘낙태죄 유지, 제한적 낙태 허용’이라는 정부안을 지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성별로는 남성과 여성은 각 56%와 55%, 연령별로는 10대부터 60대까지 연령층에서, 이념성향별에서는 진보·중도·보수 할 것 없이 모두 50% 이상의 비율로 정부안을 지지했다. 다만 70세 이상층에서는 낙태를 허용하면 안 된다는 응답이 42%로, 제한적 허용 33%, 전면 허용 14%보다 상대적으로 높은 비율을 보였다.

이번 조사는 국내 통신 3사가 제공하는 휴대전화가상번호(100%)를 이용한 전화면접으로 이뤄졌다. 가중치산출 및 적용방법은 2020년 9월 말 행정안전부 주민등록인구 통계 기준, 성·연령·지역별 가중치 부여 방식으로 이뤄졌다.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서 ± 3.1%p, 응답률은 29.9%다. 한편 낙태죄를 존치하고, 대신 처벌요건을 완화하는 이번 낙태죄 개정안에 대한 정치권과 시민사회의 반응은 엇갈렸다. 권인숙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 10월7일 자신의 SNS를 통해 “이번 개정안은 그간 사문화되고 위헌성을 인정받은 낙태 처벌 규정을 되살려낸 명백한 역사적 퇴행”이라며 “지난 8월 법무부 양성평등정책위원회가 낙태죄를 비범죄화하고, 여성의 재생산 건강권을 보장하는 법 개정을 법무부에 권고한 것과 완전히 배치되는 것”비판했다. 이어 “원치 않는 임신·출산으로부터 안전한 임신중단을 원하는 당사자 여성의 목소리와 낙태죄 비범죄화를 요구하는 국민인식 변화에도 부합하지 않는 결정”이라며 “낙태 처벌보다 임신여성의 재생산권 보장을 위한 지원과 보호를 중심으로 논의하는 국제적 동향에도 반한다”고 지적했다. 정의당도 반대의 입장을 밝혔다.

이날 조혜민 정의당 대변인은 논평을 통해 “수많은 여성이 검은 옷을 입고 낙태죄 폐지를 외쳤지만, 현실은 달라지지 않았다"며 "결국 낙태죄는 폐지하지 않고 처벌 기준만을 완화하겠다는 것과 별반 다를 바 없다”고 비판했다. 법무부 양성평등정책 특별자문관인 서지현 검사도 자신의 SNS에 글을 올려 “주수 제한 내용의 낙태죄 부활은 형벌의 명확성, 보충성, 구성요건의 입증 가능성 등에 현저히 반하는 위헌적 법률 개정”이라고 비판했다. 낙태 합법의 기준이 ‘임신 14주’로 정리된 것을 두고도 비판이 일고 있다. 계속 낙태를 범죄화하며, 14주라는 기간 자체도 지나치게 짧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헌재가 법정의견에서 언급한 낙태죄 비범죄화 범위는 임신 이후 22주인데, 정부안 14주는 이에 비해 8주나 짧은 것이다. 한편, 아예 낙태 허용 자체에 대한 반대 의견도 나왔다.

‘전국 174인의 여성 교수 일동’은 이날 성명서를 통해 “우리 여성 교수들은 보건복지부의 낙태 일부 허용의 입법 추진을 강력히 반대한다”며 “태아는 여성의 신체의 일부가 아닌 한 인간으로 성장하게 될, 생명권을 가진 독립된 생명체이고, 우리도 한때는 태아였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이번 개정안은 낙태 허용범위를 심각하게 확대했는데 대부분의 낙태가 12주 안에 이뤄지는 점을 감안했을 때 사실상 모든 낙태를 허용하는 셈”이라며 “태아의 생명권을 완전히 무시하는 처사”라고 비판했다. 교리상 낙태를 사실상 금지하고 있는 천주교의 경우, 지난 10월14일 낙태죄 전면 폐지를 지지하는 1000여 명의 여성 천주교 신자들이 임신 14주 이내에만 낙태를 자유롭게 허용하는 정부의 입법예고안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냈다. 이날 시민단체 모두를위한낙태죄폐지공동행동(모낙폐)은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낙태죄 폐지를 지지하는 여성 천주교 신자 1015명의 의견서를 모아 청와대와 국회, 정부에 제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의견은 지난 9월28일부터 10월11일까지 약 2주간 취합됐다. 모낙폐는 “그동안 시대 변화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 천주교가 수많은 여성 시민들의 낙태죄 폐지 요구와 상반되는 행보를 천주교 교구 이름으로 지속해 왔다”고 지적했다. 의견서를 낸 신자들은 ▲낙태죄 폐지 적극 찬성 ▲여성 인권은 제쳐두고 ‘태아 생명’만 부르짖는 교회와 천주교에 실망과 분노 ▲낙태죄는 여성이 겪는 문제이므로 정부·국회·교회는 여성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등의 의견을 냈다.

민변 “정부 입법안 즉시 철회해야”
정부가 낙태죄를 유지하되 임신 14주 내의 낙태는 처벌하지 않는 내용을 담은 형법·모자보건법 개정안을 입법예고한 가운데,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이 이에 즉각 반발했다. 민변은 10월7일 성명을 통해 “정부의 입법안은 사실상 낙태죄를 부활시켜 여성의 자기결정권과 재생산건강권을 침해하는 위헌적이고 시대착오적인 법안”이라며 “즉시 철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날 법무부와 보건복지부가 입법예고한 개정안에 따르면 임신 14주 이내에는 어떤 경우에든 본인 결정에 따라 낙태를 할 수 있게 됐다. 성범죄나 건강 등 특정 사유가 있을 경우 24주까지도 낙태가 가능하다. 이를 두고 민변은 “헌재의 결정은 ‘임신·출산으로 인한 모든 불이익을 여성이 감당하게 하고, 낙태한 여성을 형사처벌하겠다고 위협하며 생명을 보호한다고 자위했던 위선의 시대를 끝내라’는 언명이었다”며 “정부안은 헌재의 결정 취지에 반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정부는 헌재 결정의 핵심을 임신 주수에 따라 형사처벌의 범위를 정하는 것으로 협소하게 이해하고, 위선의 시대로의 회귀를 선택한 것”이라며 “이는 그동안 여성의 자기결정권, 재생산건강권, 평등권을 보장하기 위한 입법 논의에 찬물을 끼얹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민변은 해당 정부안에 여러 위헌소지가 있다고 주장했다. 그 근거로 “형사처벌의 기준으로 삼으려면 임신 주수를 특정할 수 있어야 하나 이는 의학적으로 불가능하다”며 “불명확한 기준을 내세워 임신중지한 여성을 형사 처벌하는 정부안은 죄형법정주의의 명확성 원칙에 위배된다”고 밝혔다. 또 “24주 이후에는 이유를 불문하고 임신중지한 여성을 형사처벌하도록 한 규정 역시 헌법상 기본권 제한원칙인 과잉금지 원칙에 위배된다”며 “14주에서 24주 사이에는 특정 사유가 있을 때만 임신중지를 허용한 것 역시 여성의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 개인정보 자기결정권을 침해한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사회적·경제적 사유가 있는 경우 상담 및 24시간 숙려 의무를 둔 것도 임신중지 시기를 늦춰 여성의 건강권을 침해한다”며 “의사의 임신중지시술 거부권을 모자보건법 개정안에 명시한 것도 건강권 침해 소지가 크다”고 말했다. 민변은 미성년자에 대해 추가 동의요건을 거치도록 규정한 것과, 여성들의 목소리를 반영하려는 소통의 절차도 없었던 점을 지적하며 “정부는 낙태죄를 전면 폐지하고 여성의 자기결정권과 재생산건강권을 실질적으로 보장할 수 있는 법과 제도를 마련하라”고 요청했다. 한편, 한국여성변호사회(여변) 역시 이날 정부의 입법예고를 두고 “낙태 허용시기를 헌재 결정에 따라 22주로 확대하고 낙태 허용 예외요건 또한 확대해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존중해야 한다”는 내용의 성명을 발표했다. 여변은 “입법예고된 형법과 모자보건법 개정안이 안전한 인공임신중절 환경을 조성하고 임부에 대한 사회적 지원을 강화하는 방안을 담고 있는 것은 환영할만한 하다”면서도 “여전히 24주 이내 임신 중기 여성들은 법률상 허용 예외요건에 해당하지 않는 경우 형사처벌의 대상이 된다”고 지적했다. 이어 “헌재는 낙태 허용기간의 마지노선을 22주로 보았으나 개정안이 그보다 짧은 14주로 기간을 단축시킴으로써 임신한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제한하는 것은 헌재의 결정취지에 반한다”며 “낙태 허용요건 또한 한정적으로 열거되어 있어 다양하고 광범위한 사회적·경제적 사유에 따른 낙태갈등 상황이 포섭되지 않고 있다”고 비판했다.

낙태시술 및 먹는 낙태약에 건강보험 적용될 듯
정부가 최대 24주까지 임신중단(낙태)가 가능하도록 하는 입법개선안을 내놓으면서 낙태시술·먹는 낙태약에 대한 건강보험 적용 등 후속작업이 진행될 전망이다. 건강보험 적용에 대해서는 낙태죄 폐지 찬성·반대 단체들이 모두 대체로 찬성하는 분위기다. 이에 따라 시민들의 공감을 끌어내는 것이 관건이 될 것으로 보인다. 10월9일 여성계 등에 따르면 낙태시술·먹는 낙태약에 건강보험을 적용하면 낙태에 드는 비용부담이 줄어들 뿐만 아니라 그간 음성화했던 낙태에 대한 모니터링과 관련 통계 확보가 쉬워진다는 장점이 있다. 실제 낙태를 경험한 여성의 다수가 경제적 여건 때문에 낙태를 선택한 것으로 파악된다.

2018년 보건복지부와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발간한 ‘인공임신중절 실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낙태 경험자의 낙태 이유(복수응답)로는 ‘경제상태상 양육이 힘들어서’라는 응답이 32.9%에 달했다. 가장 응답이 많았던 답변은 ‘학업·직장 등 사회 활동에 지장이 있을 것 같아서’(33.4%)였다. ‘자녀 계획 때문에’(31.2%), ‘파트너와 관계가 불안정해서’(17.8%), ‘파트너가 아이를 원하지 않아서’(11.7%)라는 답변도 있었다. 보고서는 “‘경제상태상 양육이 힘들어서’는 연령이 낮거나 사실혼·동거여성에서 응답률이 상대적으로 높았다”고 밝혔다. 조사는 3년 내 낙태 경험이 있는 20~44세 여성 20명에 대한 심층면접 방식으로 진행됐다. 임신중절수술 지불 비용은 ‘30만~50만원’이라는 응답이 41.7%로 가장 많았다. 그다음으로는 ‘50만~100만원’(32.1%)이었다. ‘30만원 미만’은 9.9%, 100만원 이상에 대한 응답들도 총 7.9%에 달했다. 나이가 어릴수록 임신중절수술 지불 비용이 낮아지는 경향이 있었다. 보고서는 “비용은 수술기관을 찾는 데 있어 매우 중요한 요인이 된다”며 “특별히 연령이 낮고, 미혼에서는 더욱 비용의 문턱은 높을 수밖에 없다”고 평가했다.

미프진 등 낙태약 구매에 필요한 비용에 대한 응답은 ‘10만원 미만’이 36.3%, ‘10만~20만원’이 24.3%, ‘20만~30만원’이 13.9%로 나타나 상당수는 30만원 미만의 범위에서 약물을 구매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 외에는 ‘30만~40만원’(12.2%), ‘40만~50만원’ 3.7%, ‘50만원 이상’ 9.6%의 응답이 있었다. 먹는 낙태약과 낙태 시술에 대해 건강보험을 적용하더라도 건강보험 재정에 큰 부담은 없을 전망이다. 보고서에 따르면 2017년 연간 4만9764건의 낙태가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보고서는 만 15~44세 가임기 여성 1000명당 4.8건의 낙태가 있었던 것으로 봤다. 건강보험 수가가 시술이나 약에 대해 평균 10만원 정도 적용된다고 가정해 단순계산하면 먹는 낙태약과 낙태 시술에 드는 건강보험 재정은 연간 50억원 수준이다. 이상민 나라살림연구소 수석 연구위원은 “연간 정부 총지출이 500조원 정도인데 건강보험재정은 연간 50조원에 달할 정도로 매우 크다”며 “연간 50억원은 건강보험재정에 매우 미미한 수준”이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먹는 낙태약과 낙태 시술에 건강보험을 도입하기 위해서는 시민들의 공감을 끌어내는 게 관건이 될 것으로 보인다. NM

장정미 기자 haiyap@newsmaker.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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