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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하지만 가장 폭력적인 놀이 ‘오징어 게임’

기사승인 2021.10.07  13:0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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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성 잃지 않는 인물 통해 희망 전하고 싶었다”

‘오징어 게임’은 오징어 모양을 이루는 동그라미, 세모, 네모 도형이 그려진 그림 위에서 공격자와 수비자가 대치하는, 1970·80년대 유행했던 추억의 놀이다. 동시에 가장 몸을 많이 쓰는 경쟁적이고 폭력적인 놀이였다. 공격자가 수비의 방해를 뚫고 오징어 머리에 해당하는 동그라미 안으로 들어가거나 수비가 공격자를 쓰러뜨리게 되면 승리한다. 만약 어린 시절 골목길, 학교 운동장에서 친구들과 즐겨하던 놀이가 어른이 된 우리들의 운명을 결정하고 목숨을 빼앗아간다면? 넷플릭스 시리즈 <오징어 게임>에 그 답이 있다.

신세영 기자 syshin@

▲ 황동혁 감독

황동혁 감독은 2007년 <마이 파더>로 데뷔한 이래 매 작품 새로운 장르와 이야기를 선보여왔다. 청각 장애 학교에서 벌어진 믿기 힘든 실화를 그린 영화 <도가니>(2011)는 관련 법 제정으로 이어지며 사회에 큰 반향을 일으켰고, <수상한 그녀>(2014)는 따뜻하고 유쾌한 웃음으로 866만 관객을 사로잡은 것은 물론 중국, 베트남, 일본, 태국 등 8개 국가에서 리메이크되는 쾌거를 달성했다. 첫 사극 연출작인 <남한산성>(2016)은 시대를 뛰어넘은 묵직한 메시지로 깊은 울림을 선사하며 백상예술대상 영화부문 작품상, 청룡영화상 각본상 등을 수상했다.
흡입력 있는 이야기와 깊은 주제 의식으로 사랑받아 온 그가 <오징어 게임>으로 또 한 번 전 세계를 놀라게 할 준비를 마쳤다. 황 감독은 극한 경쟁에 내몰린 현대사회를 어린 시절 추억의 놀이와 결부시킨 거침없는 상상력으로 전에 없던 강렬한 이야기를 탄생시켰다. 그는 “게임 안에 들어와 있는 사람들에게 절망과 공포, 분노, 슬픔만이 남은 것 같으나 그 와중에도 인간성을 잃지 않는 인물을 통해 희망 또한 전하고 싶었다”며 언어와 국적을 뛰어넘어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질문을 던진다.

“우승상금 456억, 게임에 참가하시겠습니까?”
세계적인 엔터테인먼트 스트리밍 서비스 넷플릭스(Netflix)의 <오징어 게임>이 9월 17일 공개됐다. <오징어 게임>은 456억 원의 상금이 걸린 의문의 서바이벌에 참가한 사람들이 최후의 승자가 되기 위해 목숨을 걸고 극한의 게임에 도전하는 이야기를 그린다. 만화를 탐독하던 30대에 극한 게임에 빠져드는 사람들의 이야기에 흥미를 느낀 황동혁 감독은 한국인이라면 어린 시절 경험해봤을 놀이와 어른이 돼 무한 경쟁에 내몰린 현대인들 사이의 연결고리를 포착해 시나리오 작업에 돌입했다. 2009년 대본을 끝냈지만 파격적인 소재와 표현 방식, 영화로 풀어내기엔 방대했던 <오징어 게임>은 넷플릭스를 만나 풍성하고 깊이 있는 9개의 에피소드로 완성됐다. “도전적인 작품을 만드는 데 가장 중요한 물질적, 정신적 자유를 얻을 수 있었다”고 밝힌 그는 길이와 형식, 내용에 제약을 두지 않고 본인이 그린 세계를 거침없이 풀어나갔다.
독창적인 상상력을 바탕으로 한 치 앞도 예상할 수 없는 거대한 스케일의 게임과 참가자들이 빚어내는 숨 막히는 스릴이 보는 이를 압도한다. 황 감독이 그린 <오징어 게임>은 현대 자본주의 사회를 우회적으로 그린 하나의 거대한 알레고리다. 잘먹고 잘살기 위해 만들어진 자본주의가 극단적이고 경쟁적으로 변질되면서 인간의 본질과 인간성을 훼손시키고 공격하는 아이러니에 주목한 그는 어린 시절 추억을 활용해 더욱 극적인 대비를 만들어냈다. 사회에서 벼랑 끝에 몰려 서바이벌에 참가한 이들은 거액의 우승상금을 향해 돌진한다. 함께 참가한 경쟁자들에 대한 배려를 찾기란 쉽지 않다. 타인은 물론 자신조차도 믿을 수 없는 극한의 상황에서 규합과 배신, 화합과 갈등이 난무하고, 모든 참가자들은 큰 변화를 겪는다.

파격적인 설정 속 위화감 없이 연기한 배우들
456억 원의 상금을 차지하기 위해서 목숨을 건 게임에 참가한 사람들, 저마다의 사연으로 극한 게임에 뛰어든 이들은 매 라운드마다 충격과 반전을 선사한다. 이 파격적인 설정을 위화감 없이 받아들이고 몰입하게 만드는 것은 단연 배우들의 힘이다. 이정재, 박해수, 오영수, 위하준, 정호연, 허성태, 트리파티 아누팜, 김주령 등 7명과 함께 게임에 참가한 449명의 게임 참가자부터 동그라미, 세모, 네모 가면을 쓴 관리자들, 정체를 알 수 없는 VIP들까지 수백여 명의 연기자들이 <오징어 게임>의 신선한 이야기를 가득 채운다.
이정재는 벼랑 끝에 몰린 기훈으로 파격 변신한다. 실직, 이혼, 도박, 사채까지 전전하며 가족에게도 환영받지 못하던 기훈은 극한의 상황 속에서도 희망과 인간다움을 잃지 않는 인물이다. “밝고 천진한 외형과 삶에 대한 무거운 고통을 지닌 내면을 동시에 표현하려 했다”는 이정재는 살기 위해선 타인을 해쳐야 하는 아이러니한 상황 속에 놓인 기훈의 혼란부터 생존을 위한 처절한 사투까지 생생하게 그려내며 몰입감을 더한다. 황 감독은 “기훈이 게임을 거치면서 조금씩 변화하는 모습을 잘 살려줬다”며 이정재의 열연에 감탄을 아끼지 않았다.
박해수가 냉철함을 잃지 않는 상우로 분했다. 증권회사 투자팀장으로 승승장구하다 잘못된 선택으로 감당할 수 없는 빚더미에 앉은 상우는 456억 원이 걸린 게임에서 어린 시절 함께 자란 기훈과 마주하게 된다. 타고난 머리로 앞으로 이어질 게임을 예측하며 전략적인 플레이를 펼치는 상우의 냉정한 모습은 다른 참가자들의 죽음에 쉽게 동요하는 기훈과 대비를 이룬다.
위하준은 실종된 형의 행방을 쫓다 서바이벌 현장에 잠입하게 되는 경찰 준호를 맡았다. 참가자와 관리자들의 눈을 피해 홀로 수사를 이어가는 준호는 게임의 이면과 마주하는 관찰자 같은 캐릭터다. 위하준은 “눈빛, 호흡, 톤 하나까지 신경 쓰며 미묘한 감정 변화를 표현했다”며 준호가 그곳에서 목격한 진실은 무엇일지 궁금증을 더했다.

거대한 세트장부터 음악까지… ‘미지의 세계’ 구현
<오징어 게임>의 첫 번째 과제는 456명의 참가자가 게임을 펼치는 공간을 설득력 있게 구현하는 것이었다. <도가니>, <수상한 그녀>, <남한산성>에서 황동혁 감독이 그린 영화 속 세계를 완벽한 비주얼로 탄생시켰던 채경선 미술감독이 다시 합류했다. “배우들이 현장감 있는 연기를 할 수 있도록 실제 게임장과 흡사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싶던 황 감독의 요청에 따라 미술팀은 CG를 최소화하고 작품에 등장하는 세트 대부분을 실제 크기로 제작했다. 6개의 대형 게임장 세트는 물론 400여 평의 공간에 456개의 침대를 쌓아 올린 숙소 세트까지 압도적 크기의 공간들이 그 자체만으로 새로운 경험을 전한다.
<오징어 게임>에서만 볼 수 있는 색다른 비주얼과 다이내믹한 음악은 또 다른 관전 포인트이기도 하다. 채경선 미술 감독은 참가자들의 현실과는 상반되는 동화적이면서도 판타지적인 미지의 세계를 구현하고자 했다. 참가자들의 현실은 목숨을 담보로 하는 극한의 경쟁이지만 그들이 속해있는 공간은 어린 시절의 추억과 발랄한 색감으로 가득하다. “456명의 참가자가 운동회를 하기 위해 모인 사람들”처럼 보이길 원했다는 황 감독은 참가자들의 의상을 초록색 체육복으로 통일했다. 반면 게임을 운영하며 탈락자를 처리하는 관리자들은 초록색과 보색 관계를 이루는 분홍색 의상을 입혀 두 집단의 상반된 위치를 시각적으로 극명하게 담아냈다.
어린 시절 누구나 연주해봤던 리코더와 소고 같은 악기들을 활용한 음악부터 클래식, 재즈까지 다양한 장르의 음악은 시청자들의 귀를 사로잡는다. <기생충>, <옥자> 등의 음악을 작곡한 정재일 감독은 “추억과 클리쉐, 키치적인 요소가 뒤섞인” 음악으로 <오징어 게임> 속 아이러니를 극대화하며 감성을 끌어올렸다. 아름다웠다가 슬펐다가 친숙했다가 낯설게 변주되는 음악은 한 치 앞도 예측할 수 없는 <오징어 게임>과 캐릭터의 변화를 대변해 몰입감을 더한다.

Q. <오징어 게임> 기획의 시작과 과정이 궁금하다
- 게임 소재 만화를 탐닉하던 중 한국적인 서바이벌물을 만들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린 시절 친구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냈던 단순한 놀이들을 목숨 걸고 하게 되는 상황이 온다면 얼마나 아이러니할까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렇게 <오징어 게임>의 대본을 쓰게 됐다. 어느 날 갑자기 가장 아름답던 추억이 가장 끔찍한 현실로 변해버리는 아이러니. 그것이 <오징어 게임>의 기획 의도다.

Q. <오징어 게임>을 제목으로 설정한 이유가 있는지?
- 한국의 경제 성장이 궤도에 오르던 70-80년대, 오징어 게임은 어린아이들이 즐기던 골목의 놀이였다. 그리고 가장 몸을 많이 쓰는 경쟁적이고 폭력적인 놀이였다. 현재 이 시대를 살아가는 모두가 극한의 경쟁으로 내몰리는 것을 보며 이 놀이의 이름을 그대로 제목으로 쓰기로 했다.

Q. 게임 선택의 기준은?
- 경쟁이나 생존으로부터 자유로웠던 어린 시절에 했던 놀이를 나이가 들어 모든 것을 걸고 하게 되는 상황에서 오는 아이러니에 역설적인 재미를 느꼈다. 그래서 어린 시절의 게임들로 구성해 보고 싶었다. 게임은 처음 접하는 사람도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고 비주얼적으로도 힘이 있는 놀이들을 선택했다. 게임의 룰이 단순할수록 오히려 게임에 걸린 리스크와 충돌하며 더 큰 아이러니와 긴장감을 불러일으킬 거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개인으로 하는 게임과 팀을 이루는 게임들을 조합해 참가자의 변화를 보여주려 했다.

Q. 생존 서바이벌을 통해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있나?
- 참가자들은 그저 살아남고자 한다. 지금 이 세상을 살아가는 많은 사람처럼 살아남고자 하는 것뿐이다. <오징어 게임> 안의 사람들은 뉴스에서 그리고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사람들이다. 서바이벌 게임에 참가한 이들과 우리 자신이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전달하고 싶었다. 곧 그게 우리 자신의 모습이 될지도 모른다는 걸 전달하고 싶었다.

Q. 전체적인 작품의 콘셉트는?
- 현실의 세계는 거칠고 사실적으로, 게임 속의 세상은 동화적이면서 판타지스럽게 묘사했다. 그런 이질감들이 충돌하면서 오는 부조리한 세상을 표현하려고 했다. 우스꽝스럽고 슬프고 잔인하고 거칠지만 아름다워 보이기를 바랐다.

Q. 관전 포인트를 꼽는다면?
- 첫째, 다음 게임이 무엇이고 참가자들은 과연 어떻게 해결해 나가냐는 것이다. 게임이 발표되고 사투를 펼치는 참가자들을 보는 재미가 있을 것이다. 둘째는 사람들의 변화다. 참가자들은 게임을 거듭하면서 화합과 갈등을 겪는다. 그리고 자신 내부에서 또 사람과의 관계에서 큰 변화를 겪는다. 이들을 보면서 과연 나라면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다.

Q. 전 세계 넷플릭스 시청자에게 한 마디
- 한국의 게임을 소재로 하지만 어린 시절 누구나 비슷한 놀이를 하고 자란 기억이 있을 것이다. 게임에서 볼 수 있는 인물들과 그들이 처한 상황은 언어와 국적을 뛰어넘어 지금 현시대를 살아가는 모두가 공감할 수 있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여러분이 상상하는, 상상할 수 있는 그 모든 것이 들어있으며, 또 무엇을 상상하셨든 그것을 뛰어넘는 것이 담겨 있을 것이다. 재미있게 봐주셨으면 좋겠고 이 작품을 통해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을 움직이고 있는 것은 무언가에 대해 한 번쯤 생각해볼 수 있으면 좋겠다. NM

신세영 기자 syshin@newsmaker.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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