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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서 칼럼] ‘야생마’, ‘살짜기 옵서예’의 뮤지컬 배우 겸 가수, 김하정의 삶과 사랑[4]

기사승인 2022.06.10  07:3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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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카바레’ 공연 중 성대 결절로 중도 하차,
가수 활동의 갈림길에 서다

‘사랑’, ‘야생마’. ‘금산 아가씨’, ‘살짜기 옵서예’, ‘미련’, ‘사랑이 남긴 것’의 가수 김하정씨는 1968년 이광수 원작소설을 영화화한 ‘사랑’의 주제가로 데뷔했다.

1971년, 우리나라 최초의 창작 뮤지컬 ‘살짜기 옵서예’에서 김하정은 주인공인 ‘애랑’ 역을 맡았다. 춤과 노래 그리고 연기가 바탕이 되어야만 할 수 있는 역할이었다. 이후 뮤지컬 ’바다여 말하라‘, ‘땅콩 껍질 속의 연가’, ‘캬바레’, 그리고 드라마 ‘석양의 나그네(MBC-TV), TV 뮤지컬 ‘황진이’와 ‘대춘향전’ 등으로 전성기를 구가하던 김하정.

노래면 노래, 연기면 연기, 그야말로 만능 엔터테이너였지만 이후 누구보다도 드라마틱한 삶을 살아야 했던 가수 김하정. 그의 삶과 사랑 그리고 노래 이야기, 그 네 번째.

글 l 박성서(음악평론가, 저널리스트)


마디마디, 혼신을 다해 부른 ‘구인사의 종소리’

1980년 8.15 광복절 기념공연차 독일로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취입한 노래는 ‘구인사의 종소리(김대형 작사, 작곡)’다. 충북 단양의 소백산 기슭에 있는 구인사는 대한불교 천태종 총 본산으로 전국에 140개나 되는 절을 관장하고 있는 곳.

“음반에는 이 노래의 작사, 작곡자 이름이 다르게 표기되어 있지만 가수 장덕이 만든 노래로 알고 있어요. 당시 여러 가수가 욕심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어느 날 장덕이 내게 이 노래를 불러달라더군요. 그래서 덕이를 만나 몇 차례 연습했죠. 노래 마디마디, 구구절절... 마치 내가 주인공이 된 것 같았어요. 당시 불교신자였기 때문에 더더욱 혼신을 다해 불렀죠.”

1. 구름도 길을 찾는 소백산 아래/고요히 흐르는 남한강 물결/님을 두고 정을 두고 떠나왔던 길/연화봉 비탈진 그늘 아래서/인생의 무상함은 끝이 없건만/나그네 머물 곳은 그 어디인가/바람이 부는 대로 돌리던 걸음/구인사 종이 울리네.

2. 구봉팔문 너머너머 찾아온 손님/인생의 사연들을 홀로 안고서/무성한 진달래꽃 바라다보니/굽이굽이 그 길은 멀기만 해라/철새가 바다를 건너가듯이/상월조석 깊은 뜻을 어찌 알리오/구인사 종이 울리네. -‘구인사의 종소리(김대형 작사, 작곡, 김하정 노래)’

“노래를 취입한 뒤 무용단과 함께 호텔에서 노래를 들었어요. 노래에 무용을 깔아야 하니까. 그런데 무용단장 언니가 노래를 들으며 우는 거예요. 슬퍼서 못 듣겠다며... 참 아끼는 노래인데 불교를 소재로 한 노래이다 보니까 어디 가서 자유롭게 부를 수 없었죠.”

‘구인사의 종소리’ 발표 후 김하정은 해외공연을 떠난다. 8.15 광복절 기념공연 차 독일행 비행기에 몸을 실은 것. 민요가수 최정자, 박상규, 그리고 밴드 4명과 함께였다.

▲ 독일 위문공연 중에 한 컷. 왼쪽부터 가수 박상규, 김하정, 최정자씨. 1981년 9월. (사진 2) 브라질 공연 중 가수 남상규씨(왼쪽)와 함께. (사진 3) 영화배우 최무룡씨가 운영하던 뉴욕 맨하탄의 한인클럽에서. 사진 가운데 좌측부터 김하정, 최무룡, 최정자씨. 오른쪽 끝에 코미디언 양훈씨의 모습도 보인다

김하정, 무대를 세계로 옮기다

3개월의 일정으로 떠난 공연이었지만 독일공연을 마친 후 김하정은 선배가수 최정자와 함께 프랑스 파리를 거쳐 미국 LA와 뉴욕 등, 미국 전역을 돌기 시작한다. 활동무대가 세계로 바뀐 것이다.

독일에서 일행은 베를린을 비롯해 프랑크푸르트 등 교포들이 있는 큰 도시들을 돌며 위문공연을 펼쳤다.

“가는 곳마다 교포들의 환영을 받았고 공연마다 눈물바다를 이뤘어요. 저 또한 무대에서 눈물을 감추느라 애먹었지요. 어려운 시절에 이민 와서 다들 자리를 잡고 지금은 부유하게 사는 모습을 보면서 한편으로는 뿌듯했죠.”

3개월 간의 독일공연을 마치고 프랑스로 건너가 20일 여일 체류했는데 특히 기억에 남는 것은 파리 교외에 있는 밀레의 동산에서의 야외공연이다. 화가 밀레의 고향인 바르비종은 ‘만종’의 배경으로 유명한 곳. ‘만종’의 배경이 바로 밀레의 고향 들판이었다.

“밀레의 생가가 있는 조용하고 아담한, 멋진 마을이었어요. 그때 생각나는 게 한인회 회장 아들들이 중학교 1, 2학년 쯤이었는데 대뜸 ‘가수면 자가용 비행기가 있겠네요?’ 하고 묻는 거예요. 그래서 ‘자가용 비행기를 움직이려면 기름값이 많이 들어 그냥 왔다’고 했더니 자기들이 안내하겠다면서 함께 다니며 사진을 찍었는데 나중에 보니까 발 쪽 위주로만 찍어놨어.” 공연을 겸한 멋진 여행이었지만 사진기록이 남아 있지 않아 지금도 아쉽다.

“마침 공연 날이 제 생일이었어요. 그때 한인회장이 직접 생일파티를 열어주었는데 저명인사들까지 초청해 영화에서나 볼 수 있었던 어마어마한 가든파티를 열어주었지요. 살아오면서 굳이 생일을 지키려 하지 않았고 또 제대로 차려보지도 못했는데 그날은 그동안의 생일을 한꺼번에 축하받는 듯해서 지금까지도 잊을 수 없죠.”

교포들 앞에서의 공연은 보람 있었지만 어려움도 많았다. “유럽은 처음이라 왠지 무섭더라고요. 말도 전혀 안 통하고... 최정자 언니는 비행기를 타자마자 긴장한 얼굴로 계속 ‘나무아미타불...’을 주문처럼 외우고 도착해서도 계속 김치와 누룽지만 찾고... 특히 음식이 입에 맞지 않아 일행들이 고생 많았지요.”

여정은 미국으로 이어졌다. 미국은 교포들도 많았지만 무엇보다 어려웠던 시절 부모처럼 동생들을 돌봐준 큰언니가 살고 있었다. 최정자씨 또한 딸 둘과 여동생이 미국에 거주하고 있었다.

김하정씨는 이로부터 2년 2개월 동안 미국에 체류, 미주 전역을 순회하며 교포들의 향수를 달래주었다. 미국 뉴욕한인회 박지원 회장의 도움으로 순회공연 또한 순조로웠다. 특히 휴스턴에서는 두 달간 ‘VIP 나이트클럽’에 고정출연하기도 했다.

“휴스턴은 눈이 많이 오는 지역인데 한 미국인이 트럭으로 눈길을 헤치고 먼 길을 달려왔어요. 교환 학생으로 한국 외국어대학교에 왔었는데 그때 뮤지컬 ‘살짜기옵서예’를 시민회관에서 봤대요. 그래서 아무리 눈이 많이 와도 이 가수의 공연만큼은 꼭 봐야겠다며 미국 친구를 데리고 왔었어요. 그래서 그 두 사람을 앉혀놓고 노래를 열 몇 곡 불렀다니까요. 나중에 그 미국인이 한국여성과 결혼을 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는 또 얼마나 감동적이던지...”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촬영지로 유명한 조지아주에서는 그 무렵 미국에 체류하고 있던 가수 남진, 송대관과 함께 코미디언 이순주의 사회로 공연을 했다. 결과적으로 이 미국 순회공연을 통해 그는 가수 활동에 또 다른 눈을 뜨게 되었다.

미국 순회공연 다니며 아들을 유학시켜야겠다고 결심

“LA에서 가장 오래 머물렀는데 교포들이 많아 '제2의 한국'이라 여겨졌어요. 활동성이 강하게 요구되는 도시이고 모두 자신의 생활에 충실한 모습을 보면서 강한 의지를 지닌 한국인들의 또 다른 면모를 발견했다고 할까...”

그가 들려주는 에피소드 하나, “한번은 길을 가는데 남자 둘이 쫓아와요. 진짜 김하정이냐, 아니냐... 자기들끼리 내기를 했다며. 그래서 내가 진짜라고 하니까 그럴 리 없다며, 진짜라면 ‘살짜기 옵서예’를 콧소리 내서 불러보라더군요. 아직도 나를 기억하고 사랑해주는 팬들이 이렇게 많구나, 무엇보다 가수인 것이 자랑스러웠어요.”

특히 큰 언니가 살고 있던 메릴랜드 공연을 잊을 수 없다. 무엇보다 이를 계기로 아들 정훈을 유학시켜야겠다고 결심한다. 그리고 실제로 5년 뒤, 정훈이 12살 때 메릴랜드로 유학을 보낸다.

“아들이 초등학교 다닐 때 학교에서 돌아오면 울곤 했어요. 친구들이 신문에 난 아빠 기사를 들먹이며 ‘네 아빠 또 도박했다더라...’ 등 놀리는 바람에 더이상 우리나라에서 아이를 키우면 안 되겠더라구요. 그래서 큰언니가 살고 있는 메릴랜드로 유학을 보내야겠다고 결심하게 되었지요. 어릴 때부터 천문학자가 꿈이었던 아들을 유학 보낸 건 정말 잘한 일이었어요.”

김하정에게 아들은 늘 자랑스럽다. “서울에 있을 때 아들과 함께 외출했다가 중간에 잠깐 카바레 들려 노래해야 했던 적이 있어요. 아들이 노래하는 걸 보고 싶다고 해서 데리고 들어갔는데 끝나고 무대에서 내려오니 아들이 울고 있어요. ‘엄마가 이렇게 고생을 하면서 나를 가르치시는군요.’ 하면서 정식으로 ‘감사합니다.’ 하고 인사를 하더라고요. 그때 우리 아들도 이제 다 컸구나, 뭉클했던 기억이 잊혀지지 않아요.”

아들 자랑은 끝이 없다. “유학을 보낸 뒤 10여 년 지나서 LA 초청 공연을 간 적이 있어요. 놀랍게도 공연 날 아침, 아들이 턱시도를 입고 까만색 컨티넨탈 자동차를 빌려서 친구들과 함께 호텔로 날 데리러 왔더라고요. 얼마나 듬직하고 의젓해 보이던지...”

▲ 전성기 시절 김하정 발표 음반들.

2년 7개월만에 귀국, ‘사랑이 남긴 것’으로 컴백

1983년 3월 21일, 김하정은 2년 7개월 만에 갑자기 귀국한다. 모친 박정납 여사가 위독했기 때문이다.

당시 독실한 불교신자였던 그는 귀국 후 가수 남일해, 박삼중 스님 등과 함께 재소자 위문공연을 틈틈이 다니고 있었는데 그 무렵 작곡가 박춘석 선생으로부터 신곡 ‘사랑이 남긴 것’을 취입하자는 제의를 받는다. 당시 박춘석 선생은 길옥윤, 송재리와 공동으로 태양음향을 설립, 제2의 전성기를 꿈꾸고 있었다.

악보를 보는 순간, 가사가 와닿았다. 특히 ‘이별 이후 모든 걸 다 잃은 줄 알았는데 새 인생이 있더라’하는 마지막 부분이 마치 그 자신에게 건네주는 말 같았다.

1. 사랑이 좋다지만 그렇지도 않더라/사랑의 정열 식어지면 가슴만 아프더라/누구나 사랑에 빠지면 이 세상 다 가진 듯해도/아니더라 아니더라 남는 게 없더라/빈 가슴 뿐이더라.

2. 이별이 싫다지만 그렇지도 않더라/이별의 슬픔 세월 가니 잊혀지더라/누구나 이별을 할 때면 이 세상 다 잃을 듯해도/아니더라 아니더라 추억은 남더라/새 인생이 있더라. -‘사랑이 남긴 것(조운파 작사, 박춘석 작곡, 김하정 노래)’

▲ 민중, 광장극단의 뮤지컬 ‘카바레’ 중에서. 1985년.

“트로트 리듬의 노래였어요. 해외공연 다니며 교포들이 원하는 옛 가요를 많이 불러본 것이 취입에 자신을 갖게 했고 또 명창 성창순 선생님께 판소리를 배운 것도 큰 도움이 되었지요. 판소리를 배운 탓에 목소리가 허스키로 바뀌었지만 대신 음폭이 넓어져 전통가요에 보다 가까워졌어요.”

노랫말이 우선 가슴에 와닿아 듣는 사람의 마음을 열 수 있는 깊이 있는 노래를 불러보겠다는 각오로 ‘사랑이 남긴 것’을 취입했다. 이때가 1985년 3월.

뮤지컬 ‘카바레’에서 열연하다 성대 이상 생겨

‘사랑이 남긴 것’으로 컴백한 그는 잇달아 브로드웨이 사상 최고의 걸작 뮤지컬이라 평가받는 ‘카바레(매스터로프 작, 극단 민중, 광장 합동공연)’에 출연한다.

1985년 12월 16일부터 일주일 동안 문예회관 대극장에서 막을 올린 이 뮤지컬 ‘카바레’에서 그녀는 강인한 삶을 사는 주인공, 댄서 슈나이더 역 맡았다.

카바레는 미국 뮤지컬 사상 가장 이색적인 작품 중 하나다. 1930년대 독일을 배경으로 나치 세력이 등장할 무렵, 미국인 소설가와 카바레 댄서와의 잿빛 로맨스를 그린 이 작품은 문학적 향기가 뛰어난, 어둡고 우울한 뮤지컬로 유명하다.

“라이자 미넬리(Liza Minnelli, 영화배우)를 하루아침에 브로드웨이 스타로 만들어준 세계적인 명작이죠. 극 중에 남자 주인공인 하숙생과 악을 쓰며 싸우는 장면이 있었는데 그 장면을 한 번 하고 나면 녹초가 돼요.”

실제로 그는 이 장면을 연기한 후 무대 뒤에서 쓰러지기도 했다. 이후 병원에 갔더니 성대에 이상이 생겨 바로 수술하지 않으면 성대를 아주 못 쓰게 된다는 진단을 받았다. ‘카바레’에서도 중도 하차할 수밖에 없었다. 가수로서는 일종의 사형선고나 마찬가지였다.

▲ 박춘석 작곡의 ‘김하정-사랑이 남긴 것(1985년)’ 음반과 성대 결절 수술 후 취입한 음반들. ‘처음 본 순간(1986년)’, ‘멍텅구리, 구인사(1993년)’. ‘빈손, 당신의 나(1998년)’, ‘그리움(1999년)’.

성대 결절 수술 후 재기, 더욱 의욕적으로 신곡 취입

1986년, 결국 김하정은 경희대병원에서 성대 결절 수술을 한다, 쉽게 말해 목을 너무 많이 써 굳은 살이 붙은 걸 떼어낸 것, 그랬더니 거짓말처럼 목소리를 되찾았다.

김하정은 다시 태어난 듯 더욱 의욕적으로 신곡을 발표한다. ‘처음 본 순간(이경원 작사, 설운도 작곡, 1986년)’을 비롯해 슬로우록 리듬의 호소력 짙은 노래 ‘가지마(이수 작사, 서승일 작곡, 1992년)’에 이어 ‘멍텅구리(서경보 시, 김화경 작곡, 1993년)’ 등.

‘멍텅구리’는 통도사에 있던 일붕 서경보 스님의 시 ‘멍텅구리’에 김화경이 작곡한 노래다.

“한창 불자가수로 공연 다닐 무렵 부산으로 공연을 갔는데 친구들이 여기까지 온 김에 통도사도 가보자고 해서 함께 올라갔어요. 그곳에서 만난 일붕스님이 ‘가수라니 노래 한번 불러보라’ 하셔서 ‘새타령’을 불렀더니 흐뭇해하시면서 직접 쓴 시라며 ‘멍텅구리’라는 시를 주셨어요.”

온 곳도 모르는데 갈 곳은 어이 알리/그것도 모른단다 우리는 멍텅구리/올 때도 빈손인데 갈 때는 가져가랴/욕심만 부리노라 우리는 멍텅구리/아 멍텅구리 아 멍텅구리/백년도 못살면서 천만년 살 것처럼/준비만 하는구나 우리는 멍텅구리/자기도 모르면서 누구를 안다 하리/생각을 못 다하는 우리는 멍텅구리. -‘멍텅구리(서경보 시, 김화경 작곡, 김하정 노래)’

세태를 해학적으로 풍자한 철학적인 가사에 펑키 리듬을 가미한 댄스곡으로 누구나 쉽게 따라 부를 수 있는 노래다.

“그런데 어느 날 밤무대 업소 사장이 불러요. ‘멍텅구리’ 노래는 좋은데 손님들이 다들 자기를 보고 멍텅구리라고 하는 것 같다며 가사를 바꾸면 어떻겠냐고 해요. 모 방송국에서도 가사를 바꿨으면 좋겠다고 해서 고심 끝에 제가 직접 바꿨죠. 가사 중 ‘살아보니 모두 빈손’이더라는 메시지가 특히 공감돼 제목을 ‘빈손’으로 바꿨죠.”

‘빈손’은 작곡가 전규철에 의해 재탄생, 1998년 4월에 발표된다. 음반에 함께 수록된 노래가 가수 이용복이 만든 ‘당신의 나(이용복 작사, 작곡)’이다.
“당시 이용복씨도 개인적으로 굉장히 힘든 시기였어요. 그 심정을 담아 만든 노래지요.”

▲ 군 위문공연을 마치고 판문각 앞에서. 가수 옥희, 탤런트 박주아와 함께. 오른쪽이 김하정씨. (우측 사진) 위문공연 중인 연예인단. 김희갑, 나애심, 남보원씨 등이 보인다. 가운데 인물이 김하정씨.

역사적인 남북한 관광시대를 노래한 ‘금강산 가자’

1994년 북한의 김일성 주석이 사망하면서 북한 역사의 한 장이 막을 내린다. 이후 금강호의 뱃고동 소리와 함께 역사적인 금강산 관광 시작된다. 당시 통일이 성큼 다가온 듯한 분위기 속에 한반도는 화해 무드가 조성되었다. 이때 발표한 노래가 ‘금강산 가자(김지평 작사, 김욱 작곡)’이다. 금강산 유람을 떠나는 설렘을 빠르고 경쾌한 디스코 리듬에 담았다.

동해 바다에 해가 떴구나/유람선아 금강산 가자/선녀들이 몸을 씻고 신선들이 글을 짓던/ 금강산을 만나러 가자/갈라질 수 없는 땅에 헤어질 수 없는 겨레/저 구름 저 물새같이 가고 오며 살아보자/가자 가자 금강산 가자. -‘금강산 가자(김지평 작사, 김욱 작곡. 김하정 노래)’.

1998년 11월 19일, 역사적인 금강산 관광선이 첫 출항하던 날, 김하정은 공연을 겸해 배에 오른다. 이영숙, 임주리 등 가수를 비롯해 러시아무용단 ‘신디 클럽’도 함께 했다. 일부 승객들은 쇼가 끝난 뒤 노래자랑시간을 가지면서 금강산 관광에 대한 기대감을 달랬다.

“뱃고동이 울리자마자 터지던 함성을 잊을 수가 없죠. 저는 금강산 첫 출항하던 날부터 이후 일곱 번이나 더 갔다 왔어요. 그때마다 ‘금강산 가자’를 불렀는데, 어느 날 북한 경비원들에게 테이프를 주니 거절해요, 받으면 큰일 난다고... 그래서 우리나라에 태어난 것만 해도 참으로 감사한 일이다, 라는 생각까지 들었죠.”

밀레니엄 시대를 새롭게 준비하던 1999년. 어느덧 중년 가수가 되었지만 계속해서 그는 ‘그리움(박대림 작사, 김욱 작곡)’, ‘진도 가이나(박대림 작사, 김욱 작곡)’를 타이틀로 한 독집음반을 취입한데 이어 자전소설 '아 못다 한 사랑, 그늘에서 곱게 피다 지리라'를 출간한다. 이 자전소설은 곧바로 시나리오 작가 이호규에 의해 영화화가 기획, 진행되고 있었다. (계속)

 

 

박성서 webmaster@newsmaker.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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