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매도 전면 금지 후 구체적인 제도 개선안 합의점 못 찾아
차입 공매도 여부를 확인하지 않은 수탁 증권사에 대한 첫 제재 사례가 금융당국 심판대에 오른다. 금융감독원이 불법 공매도 여부를 제대로 확인하지 않고 주문을 받는 국내 수탁 증권사들에 대한 검사를 강화하겠다고 밝힌 지 2개월여 만이다.
황태희 기자 hth@
이번 사건을 조사한 금감원이 불법 공매도 주문자인 외국계 법인보다도 수탁 증권사에 더 높은 과징금을 부과한 점도 눈길을 끈다. 지난해 12월12일 금융당국에 따르면 금융위원회 산하 증권선물위원회와 자본시장조사심의위원회는 이 같은 내용의 안건을 논의했다.
수탁 증권사에 대한 과징금 부과 첫 사례 나오나
해당 안건은 지난해 10월10일 증선위 회의에서 처음 논의됐으나 수탁 증권사에 책임을 묻는 사례가 처음인 만큼 의결이 보류됐다. 한 금융당국 관계자는 “앞으로의 과징금 부과에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에 더 면밀히 보자는 취지에서 (수탁 증권사에 대한) 의결이 미뤄졌다”며 “당시 내렸던 결론에서 크게 바뀌지 않을 것으로 보이며, 추가 쟁점이 없으면 오래 걸리지 않아 결론이 날 것”이라고 전했다. 금융위에 따르면 지난 2021년 8월 외국 법인 ZSP인터내셔널은 소유하지 않은 하나금융지주 주식 199주(831만원)을 매도 주문을 넣은 사실이 있다. 이 중 100주(417만원)가 체결됐다. 국내에서 차입하지 않은 주식의 매도는 공매도 제한 위반에 해당한다. 금융감독원은 ZSP뿐 아니라 해당 불법 공매도 주문을 수탁받은 증권사 A사에도 책임을 물었다. 불법 공매도 수탁자 행위에 대한 제재가 이뤄진다면 국내 첫 사례가 된다. A사는 ZSP로부터 이메일로 매도 주문을 위탁받아 시장에 주문을 제출하면서 주문자가 해당 주식을 보유하고 있는지(차입 공매도) 여부를 확인하지 않은 사실이 있다. 자본시장법에 따르면 수탁 증권사는 주문이 들어온 공매도가 차입인지 아닌지 확인할 의무가 있다. 주목할 점은 금감원이 주문자인 외국인 기관보다 수탁 증권사에 더 높은 과징금을 부과했다는 점이다. ZSP 인터내셔널에는 과징금 120만원을, A사에겐 250만원을 부과한다는 내용의 조치안이 지난 10월 증선위에 상정됐다. 회의 결과 증선위는 ZSP에 과징금 100만원을 부과하기로 의결했으며, A사 제재는 보류했다. 수탁 증권사에 대한 과징금 부과가 첫 사례인 만큼 향후 유사 사례에 영향을 미칠 수 있어 기준을 면밀하게 들여다보기 위해서다. 10월 당시 회의 의사록을 보면 한 증선위원은 금감원에 “수탁 증권사에 대한 과징금 부과 방안은 제반 정황, 위탁자와의 형평 부분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수탁증권사에 대한 공매도 제재 방안을 별도로 검토해 보고해달라”고 요청했다. 공매도 주문자, 즉 위탁자는 주문을 넣을 금액을 최대 한도로 하되 고의성, 체결 비중, 시장에의 영향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과징금 액수가 정해지고 있는데 수탁 증권사는 관련 확인 의무 조항만 있지 과징금 부과 기준이 세밀하게 마련되진 않았기 때문이다. 법령상 공매도 주문을 하거나 위탁, 수탁받은 자에 대해 공매도 주문 금액을 기준으로 과징금을 부과하고 있다. 한 금융당국 관계자는 “이번 건 규모나 금액이 크진 않지만 유사한 사건 제재할 때 계속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에 더 면밀히 볼 필요가 있어 의결이 미뤄졌다”고 설명했다. 한편 금감원은 불법 공매도 근절을 위해 국내 수탁 증권사에 대한 검사도 강화하겠다고 예고한 바 있다. 지난 10월 금감원은 “국내 증권사는 계열회사 관계, 수수료 수입 등 이해관계로 위탁자의 위법 행위를 묵인할 가능성이 있는 바, 공매도 주문 수탁 프로세스와 불법 공매도 주문 인지 가능 여부 등을 면밀히 점검해 위법 사항 발견시 엄정 조치하겠다”고 밝혔다.
개미들, 공매도 담보비율 130%로 높여야
정부가 공매도 거래를 전면 금지한 지 두 달 가까이 됐지만 개미 투자자들은 더 화가 나 있다. 구체적인 제도 개선 방안을 두고 합의점을 찾지 못해서다. 금융 당국은 개인과 기관의 공매도 상환기간과 담보비율을 통일하자고 제안하지만 개인 투자자들은 “당국이 교묘히 기관의 편을 들어주려 한다”며 분노한다. 국회 내 입법 논의도 지지부진해 공매도 제도 개선안은 연내 처리가 사실상 힘들 것으로 보인다. 지난 12월6일 국회 국민동의청원 플랫폼에 따르면 ‘불법 무차입 공매도가 의심되는 국내 증권사에 대한 전수조사 요청 및 공매도제도 중단기간 내 반드시 개혁해야 할 사항에 관한 청원’은 전날 오전 동의인 수 5만명을 넘겨 소관위원회인 정무위원회로 회부됐다. 국회사무처는 국회 국민동의 청원 가운데 청원한 날부터 30일 이내에 5만명 넘게 동의한 청원을 소관위로 보낸다. 이번 청원은 정부의 공매도 중단 조치의 단초가 된 지난 10월 공매도 제도 개선 청원 이후 추가로 나온 것이다. 앞서 국회와 당국은 첫 번째 청원이 등록 8일 만에 동의자 5만명을 넘기자 제도 개선 논의에 착수해 지난 11월6일 공매도 거래를 중단시켰다. 그런데 공매도 잔고는 11월30일 기준 코스피 22%, 코스닥 15% 감소하는 데 그쳤다.
금융 당국이 공매도 금지 예외로 지정한 시장조성자(유동성 공급자)의 공매도가 여전히 이뤄지고 있어서다. 이 때문에 개미 투자자들은 “개인과 기관이 90일 이내에 공매도를 상환한 뒤 1개월간 같은 종목에 대한 재공매도를 금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앞서 금융 당국은 개인과 기관의 공매도 상환기간을 90일로 통일하는 방안을 내놨는데, 주식 상환 없이 연장이 가능하다면 무기한 공매도와 다를 것이 없다는 것이 개미들의 판단이다. 여기에 시장조성자의 공매도를 금지하고, 공매도 담보비율도 당국이 제시한 105%보다 큰 130%로 높여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공매도 전산화 시스템 역시 즉각 구축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특히 이번 청원에는 모든 증권사에 대한 불법 공매도 전수조사 요구가 들어갔다. 청원을 올린 강모씨는 “뉴스와 유튜브에 가장 많이 거론되는 신한투자증권에 대한 전수조사 및 필요시 압수수색도 불사하시길 바란다”고 썼다. 신한투자증권은 ‘배터리 아저씨’로 불리는 박순혁 작가(전 금양 홍보이사)와 선대인 경제연구소장이 유튜브 채널에서 시세 조종 의혹을 제기한 뒤로 개미들의 집중 포화를 맞고 있다.
박 작가와 선 소장은 자신들이 분석한 이차전지 종목에 대한 매도 주문이 신한투자증권 계좌에서 집중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유튜브 채널 삼프로TV를 ‘여의도 증권가의 나팔수’로 규정하고 ‘삼프로TV가 의도적으로 국내 이차전지 기업들에 대한 불안감을 키우는 내용의 방송을 내보내고 신한투자증권 등이 관련 기업에 대량 매도 주문을 넣어 의도적으로 주가를 하락시킨다’고 본다. 증권가에서는 신한투자증권이 지난해 국내 23개 증권사 가운데 공매도 거래대금 규모가 가장 컸다는 이유로 표적이 됐다고 추정한다. 반면 금융 기관 관계자들은 ‘제도 개선이 자본시장 경쟁력을 훼손하지 않는 선에서 이뤄져야 한다’고 반발한다. 송기명 한국거래소 유가증권시장본부 주식시장부장은 지난 12월4일 공매도 제도개선 토론회에서 “개인과 외국인, 기관 투자자의 거래나 결제 구조에 차이가 있어 실시간 무차입 공매도 적발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어려운 측면이 많다”고 짚었다. 이처럼 양측의 입장이 갈리면서 연내 공매도 개선 법안 통과는 쉽지 않아 보인다. 개미 투자자의 추가 요구가 거세지면서 공매도 제도 개선과 이에 따른 거래 재개가 더 멀어질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외인, 공매도 금지에도 3조원 넘게 순매수
지난해 11월 외국인이 국내 상장주식을 3조원 넘게 순매수한 것으로 나타났다. 공매도 전면금지 조치로 외국인이 빠져나갈 것이라는 우려와는 상반된 결과다. 외국인이 국내 주식시장에서 순매수세를 나타낸 것은 지난 7월 이후 4개월만이다. 12월7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외국인은 지난 11월 한달간 국내 상장주식 3조3000억원(코스피 2조3510억원, 코스닥 9490억원)을 순매수했다. 이는 지난해 1월(약 6조1000억원) 이후 최대 순매수 규모로, 11월5일 공매도 전면 금지 조치에도 이탈 없이 오히려 큰 폭의 매수세가 유입됐다. 지역별로 살펴보면 유럽의 외국인 투자자가 3조2490억원가량을 순매수하면서 가장 큰 규모로 주식을 사들였다. 다음으로 미주에서 8380억원가량의 주식을 사들였다. 반면 아시아와 중동 등에서는 각각 약 1000억원의 순매도세를 나타냈다. 11월 말 기준으로 외국인의 국내 주식 보유규모는 692조2420억원으로 전월 대비 67조5000억원가량 늘었다. 주식을 순매수한 데 더해 코스피와 코스닥이 전달 모두 상승세를 보이면서 보유지분의 가치가 늘어난 영향이다. 전체 시가총액 대비 외국인의 주식 보유율은 26.9% 수준이다. 지역별 보유 규모를 살펴보면 미국이 288조4000억원으로 외국인 투자자 주식의 41.7%를 차지했다. 이밖에 유럽 210조4000억원(30.4%), 아시아 93조2000억원(13.5%), 중동 22조2000억원(3.2%) 순서로 나타났다.
외국인은 상장채권 시장에서도 4개월만에 순투자로 전환했다. 전달 외국인은 상장채권 5조3710억원을 순매수하고 3조1400억원을 만기상환 받아 2조2310억원 순투자했다. 11월 말 기준으로 외국인의 상장채권 보유액은 244조1220억원으로 전체 상장잔액의 9.8%를 차지하고 있다. 이는 10월 대비 2조4800억원 늘어난 규모다. 지역별로 살펴보면 유럽(1조1580억원), 아시아(4830억원), 중동(980억원)은 순투자세를 보였다. 보유규모는 아시아 113조9000억원(46.7%), 유럽 72조4000억원(29.7%) 순서다. 종류별로는 국채에 2조2870억원 규모의 순투자가 몰렸고 통안채(-50억원)와 회사채(-650억원)에서는 순회수가 발생했다. 잔존만기별로 살펴보면 외국인은 1~5년 미만 채권에 2조110억원, 5년 이상 채권에 2조7550억원을 각각 순투자했다. 반면 1년 미만 채권에서는 2조5350억원 규모를 순회수했다. 보유비율을 보면 외국인은 지난해 11월 말 기준으로 잔존만기 1년 미만 채권은 38조6000억원(15.8%), 1~5년 미만은 101조6000억원(41.6%), 5년 이상은 103조9000억원(42.6%)을 보유하고 있다.
BNP파리바HSBC 등에 과징금 265억2000만원 부과
장기간의 무차입 공매도 의혹을 받는 글로벌 투자은행(IB) 등이 265억원대 과징금과 함께 검찰 수사를 받게 됐다. 지난 12월25일 금융위원회에 따르면 증권선물위원회는 12월22일 열린 제2차 임시 회의에서 글로벌 IB 2개사, 수탁증권사에 대해 자본시장법상 공매도 제한 위반으로 판단하고 검찰 고발과 과징금 265억2000만원 부과 조치를 의결했다. 이 금액은 지난 2021년 4월 자본시장법을 개정하면서 공매도 제한 위반에 대한 과징금 제도를 도입한 이후 최대 규모다. BNP파리바 홍콩법인은 2021년 9월부터 2022년 5월까지 카카오 등 101개 주식 종목에 대해 400억원 상당의 무차입 공매도 주문을 제출했다. 내부 부서 간 주식 대차내역을 시스템에 입력하지 않고 실제 소유한 주식보다 더 많은 잔고로 매도 주문을 내는 수법을 이용했다. 증선위는 BNP파리바 계열사인 국내 수탁 증권사도 지속해서 잔고 부족이 발생하는 것을 알면서도 원인 파악이나 예방조치를 취하지 않고 무차입 공매도 주문을 수탁해 중대한 자본시장법 위반을 저질렀다고 봤다. 증선위는 “매도 가능 수량 부족을 알고 있으면서도 외부 사후 차입 및 결제를 지속했다”며 “향후 무차입 공매도가 지속할 가능성이 있음을 충분히 인식할 수 있었음에도 이를 방관한 채 공매도 주문을 제출한 것으로 봐 고의성이 있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HSBC는 2021년 8월부터 같은해 12월까지 호텔신라 등 9개 주식 종목에 대해 160억원 상당의 무차입 공매도 주문을 제출했다. 이 회사는 총수익스와프(TRS) 주문을 받고 이를 헤지하기 위한 공매도 주문을 내는 과정에서 향후 차입 가능한 수량을 기준으로 주문을 제출해 왔다. 증선위는 HSBC가 이 같은 공매도 업무처리 프로세스가 국내 공매도 규제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음에도 오랜 기간 공매도 후 사후 차입하는 행위를 지속했다며 위법행위의 고의성이 있다고 판단했다. 증선위 관계자는 “이들 글로벌 IB의 위반행위를 자본시장 거래질서 및 투자자의 신뢰를 훼손하는 중대사안으로 판단해 공매도 제한 위반에 대한 과징금 제도 도입 이후 최대 규모의 과징금을 부과했다”며 “금융당국은 건전한 자본시장 확립을 위해 각종 불공정거래 및 공매도 제한 위반 행위에 대해 엄정 대응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NM
황태희 기자 hth@newsmaker.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