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은 고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이성의 억압으로부터 자유로움을 추구하는 영역이었다. 따라서 예술가들은 인간 정신을 자유롭게 하는 미술활동으로 표현·유희적 의미를 마음껏 표출했다.
차성경 기자 biblecar@
예술은 사회의 모습을 반영하기에 좋은 수단으로 문화를 이끌어가는 핵심적인 역할을 할 수 있다. 단순한 시각적인 아름다운 미술을 넘어 어떠한 목적과 의미를 갖고 적극적으로 소통할 수 있는 매개체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다.
▲ 고성만 화백 |
힙합과 단색화를 조합해 새로운 ‘생추상’ 장르 창시
“예술의 진정한 역할은 순수한 삶의 형상을 보여주거나 정신성과 같은 인간의 본질을 보여주는 데 있습니다. 절대 겉모양을 보여주는 게 아니죠. 인간 삶의 태도를 보여주는 것이 생추상인 이유입니다.” 고성만 화백의 행보가 재조명되고 있다. 최근 주목을 받고 있는 고성만 화백은 한국과 뉴욕을 오가며 힙합과 단색화를 조합해 새로운 ‘생추상’(LIVING ABSTRACTION) 장르를 열고 있는 작가다. 기법상 동양 단색화와 서양 추상표현주의 그래피티를, 한국의 색동과 한국 힙합을 적극적으로 콜라보한 생추상은 ‘누구라도 작가가 될 수 있다’라는 포스트모더니즘과 궤를 함께하는 것으로, 요즘과 같은 1인 인터넷 시대에 글로벌적 콜라보레이션이 만든 작품세계라고 할 수 있다. 고성만 화백은 “내가 본 서양의 물질성에서 힙합이나 그래피티 등을 도구로 해서 한국의 단색화 같은 정신성을 함께 풀어낸 것이 생추상이다”면서 “우리는 우리대로 단색화를 봤고, 미국과 한국의 중간자적 입장에서 30년 살아오면서 내 방식대로 풀어낸 것이다”고 설명한다.
동양 단색화와 서양 추상표현주의 그래피티를,
한국의 색동과 한국 힙합을 적극적으로 콜라보
삶의 궤적 속에서 한국의 오방색과 미국 힙합을 작품에 끌어들여 눈에 보이지 않는 흥을 표출하며 인생이라는 리듬을 생추상 연작으로 표현하고 있는 고성만 작가. 지금까지 없었던 새로운 장르 ‘생추상’은 1960년대 전후 제안된 프랑스 생철학과 궤를 같이한다. 인간 존재의 흔적을 표현하는 새로운 예술적 삶의 표현이며 교과서에 나오는 아카데미즘적인 기존 미술 카테고리에 본능적 거부감을 느꼈던 고성만 화백은 자신이 직접 경험한 삶에서 표출하면서 진정한 예술을 느꼈다. ‘생추상’을 통해 한국과 미국의 문화적 요소를 결합한 독창적인 작품세계를 구축해 나가고 있는 고 화백의 ‘생추상’ 작품은 한국의 오방색과 미국 힙합을 끌어들여 눈에 보이지 않는 흥을 표출하고 있으며, 인생이라는 리듬을 작품으로 표현하고 있다. 고 화백은 “내 작품은 단순히 서구를 추종하는 게 아닌 순수한 생추상이다. 내 작품은 주제부터가 무겁다. 그래서 대중적이고 유명한 전시가 되기 어렵다”면서 “어떤 면에선 정치적인 주제고 합리적인 주제가 담겨 있다. 여기에 한국 단색화의 정신성과 서양의 물질성인 힙합과 그래피티 속에 담겨 있는 한(恨)과 문화, 역사성, 철학 등을 풀어낸 것이 생추상이다”고 강조했다.
▲ 생추상(Living Abstraction) 300호, MIXED MEDIA ON CANVAS 2024 |
인간 존재와 생존이라는 주제에 천착하다
1970~80년대를 한국에서 보내고 자유와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면서 미국으로 갔던 고성만 작가는 인종차별을 겪으며 30년간 미국 생활을 하는 동안 인간 존재와 생존이라는 주제에 천착해왔다. 이후 앤디 워홀, 잭슨 폴록 등으로 대변되는 백인 예술과 그라피티를 내포한 흑인 중심 힙합 문화를 두루 섭렵하고 두 가지 문화 요소를 콜라보해 삶의 순수한 형상과 인간의 본질을 그림으로 표현하기 시작했다. 고성만 화백은 “미국에서 한창 힙합이 무르익던 시절에 나는 흑인들의 티셔츠나 자켓, 레코드판에 들어가는 힙합 그림을 그려주며 생활을 했다. 그들의 ‘아트 디렉터’가 됐다”면서 “흑인들은 힙합이 하나의 산업이 됐음을 알았다. 흑인들과 지내면서 힙합은 내 삶의 일부분이 되었다. 한국에 와서 만난 갤러리 대표가 힙합 전시를 하겠다는 말에 ‘인사동에서 힙합 전시가 과연 성공할까’ 의문이 들었으나 한국도 변했다. 오히려 더 힙합을 즐긴다. ‘힙합 역사’를 보니 1980~2000년대가 피크였으니 나의 생추상과 힙합은 동시대적 역사성을 갖고 있다”고 부연했다.
동·서양의 문화요소 콜라보해
삶의 순수한 형상과 인간의 본질을 그림으로 표현
자신이 인종, 종교, 국적 등 사회적 정체성이 나타나는 사안에 있어서는 늘 경계인이자 날카로운 지점에 놓여 있었다는 고성만 화백. 그는 세계 속에 던져진 ‘나’라는 존재, 그 존재론적 관찰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고 화백은 “이러한 노마디즘(유목민) 인간일수록 자기가 귀속된 국가 체제와 종족에 관한 문제에 늘 깨어 있어야 한다”면서 “그래서 더욱 자신의 생각이 세상의 다리가 될 수 있다는 의식을 가지고 사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의 작품에서는 프랑스나 유럽 화단 일변도에서 벗어난 첫 세대로 미국적인 실험성, 실크스크린, 잭슨 폴록의 자유로움, 앤디 워홀의 모던함 같은 미국의 상징들을 느낄 수 있다. 그리고 한국 단색화의 정신성과 작품성이 함께 나오며 동서양의 문화 요소가 융합되었다. 고성만 화백은 “내가 단색화에서 위안을 받은 것은 ‘단색화가 우리의 정신성이고 한국인에게 맞다’고 평가했고, 서양과 이론적으로 비교할 때도 단색화를 훌륭한 도구로 생각했다. 10년 전만 해도 단색화가 크게 유명하지 않았다. 한때는 한국인 작가가 그린 단색화 작품들이 프랑스 전시에 출품된 것을 보고 ‘앞으로 단색화 시대가 오겠구나’ 생각했다”면서 “30년간 뉴욕 생활했던 나는 미래를 위해 어떤 역할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가졌다. 새로운 문화가 있어야 미래의 젊은 세대가 큰 발전이 있다, 남의 것만 따라가서는 안 된다. 내 것을 만들어야 내 것이 되는 것”이라고 피력했다.
▲ 생추상(Living Abstraction) 50호, MIXED MEDIA ON CANVAS 2024. |
한국의 예술가들이 지녀야 할 이상적 방향성을 보여주다
“사람이 우주입니다. 사람을 살리는 예술, 삶 자체가 예술입니다. 각자의 인생길의 공명을 저마다의 표현으로 표출하고 많은 사람들과 공감하는 것. 그것이 현실을 담은 추상 아닐까 합니다.” 한국, 미국, 중국, 러시아 등 국내외 그룹전과 개인전을 통해서 자신만 미학을 구축해 나가고 있는 고성만 화백은 그의 개인전 <100 US$ Fantasia(백 딸라 환상곡)>, <Dumping(던지기)>,<Melting Pot(인종의 용광로)> 등의 명제를 보면 알 수 있듯이 미술을 미학적 형식에 머물기 보다는 사회와 문화의 총론적 시각에서 담론화하며 자신만의 의식으로 표출하는데 의의를 두고 있다. 특히 지난해 11월 인사동 아트불에서 개최됐던 <생추상> 전시는 한국의 예술가들이 지녀야 할 이상적 방향성을 보여준 이벤트라는 평과 함께 고성만 화백의 작품과 드럼 연주가 더해진 신개념 전시로 관람객에게 깊은 인상을 남기기도 했다.
미술을 사회와 문화의 총론적 시각에서
담론화하며 자신만의 의식으로 표출
7월25일~29일까지 원주 인터불고 호텔에서 아트페어를 성황리에 마친 고성만 화백은 지난 7월23일부터 오는 8월6일까지 서울 중구에 위치한 갤러리아람에서 ‘현실을 담은 추상’이라는 주제로 강정옥 작가와 함께 2인전을 개최하고 있으며, 9월26일~29일까지 대구 엑스코 아트페어 2024, 10월 말에는 인사동 인사아트센터에서 개인전이 예정되어 있다. 고성만 화백은 “저에게는 한 가지 바람이 있다. 생추상이 한국에서 나온 새로운 예술 장르가 됐으면 한다. 한국에서 태어나고 미국에서 이민 생활한 작가의 바람이자 자부심”이라면서 “생추상이 예술의 새로운 형태로 많은 이들이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나갈 수 있는 길이 되기를 희망한다”고 밝혔다. 한편 홍익대학교 미술대학원 회화과를 졸업하고 미국 뉴욕 아트 스튜던트 리그(Art Student League Of New York)에서 수학한 고성만 화백은 현재 이미지연구회장, 한류미술협회장, 서울시 중구 미술협회원, (사)한국미술협회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2023 올해의 작가상’을 수상했다. NM
▲ 고성만 화백은 지난7월23일부터 오는 8월6일까지 서울 중구에 위치한 갤러리아람에서 ‘현실을 담은 추상’이라는 주제로 강정옥 작가와 함께 2인전을 개최하고 있다. |
차성경 기자 biblecar@newsmaker.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