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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서 평론] 재즈가수 윤희정, 에보니스의 70년대 포크 음반을 다시 듣다

기사승인 2016.04.10  00:4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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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1년 제1회 KBS배 쟁탈 ‘전국노래자랑’최우수상에 빛나는
윤희정 데뷔 음반 ‘세노야 세노야’, 에보니스와의 스필릿(Split) 음반 ‘별리/지난 여름날의 이야기’를 다시 듣다

 

   
 
음반을 보면 시대가 보인다.
다시 LP붐이다. 그렇듯 ‘복고’가 또 하나의 문화적 트렌드가 된 현상은 다소 모순적이지만, 분명 ‘복고’는 회귀가 아닌 혁신의 문화코드다. 너무 빨리 지나간 탓에 미처 발견되지 않았던 것들이 이제야 서서히 제 모습을 드러내듯 때로 오래된 것은 새로운 것보다 더 새롭다.
Back to the Future... 비록 역주행일지라도 옛것을 접하면 우선 마음이 따뜻해진다. 익숙한 것 자체가 주는 ‘편안함’이랄까.
지성과 감성으로 70년대 대중음악을 더욱 아름답게 수놓았던 포크송,1 990년대에 들어서며 ‘언플러그드(Unplugged)’라는 음악 용어가 그렇듯 완벽하고 가공된 음악에 염증을 느낀 음악 팬들로부터 주목 받았다. 통기타, 하모니카, 피아노 같이 전기의 힘을 빌리지 않고 자유롭고 즉흥적이며 자연스러운 형태의 음악에 눈을 돌리게 되면서부터다.
‘70년대 청년문화, 그 젊음의 연가’, 테크노 뮤직시대에 더욱 빛나는 아날로그적 감성이 그렇듯 옛 노래에 대한 시효성은 없다. 시간이 지날수록 빛바래듯 더욱 빛이 난다. 젊은 날의 추억으로, 젊은 세대에게는 새로운 대중문화의 코드로 빛나는 당시 포크송 음반, 두 장을 소개한다. 지금은 재즈가수로 활동하고 있는 윤희정의 데뷔 음반 ‘내님의 목소리/세노야 세노야’, 그리고 에보니스와의 스필릿 음반 ‘별리/지난 여름날의 이야기’를 들어본다.

글 /  박성서(음악평론가, 저널리스트)

1971년 제1회 ‘KBS-TV 전국노래자랑’에서 최우수상 수상, ‘절대음’을 구사했던 윤희정

   
▲ ‘전국노래자랑(1971년)’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한 윤희정 관련기사, 1972년
71년 한 해 동안 통산 1천5백여 명의 가수지망생이 출전, ‘긴 시간 치열한’ 노래다툼을 벌인 제1회 ‘KBS 배쟁탈 전국노래자랑대회’에서 1등을 차지한 윤희정(당시 19세. 본명 金明姬).
1953년 6월11일 인천 출신인 윤희정은 싱어송라이터로써의 재질이 돋보인다. 인천 인성여중․고 시절 6년간 음악부장을 지냈음은 물론 백일장에서 여러 차례 상을 독차지했을 만큼 문학소녀이기도 했다. 틈틈이 인천시 공보관에서 노래지도자 생활도 겸했다. 데뷔 당시인 1972년 기사 내용이다.
기사에 의하면 윤희정은 11월 주말대회에서 <별이 빛나는 밤에(윤항기 곡)>로 첫 출전했으나 삼천 원짜리 쇠줄 기타가 끊어지는 바람에 어이없이 탈락, 다음달에 1만5천 원짜리 기타를 들고 나와 다시 도전, 자작곡 <눈 감으면>으로 연말결선 참가권을 따낸 동시에, 결국 <세노야 세노야>로 최우수상을 차지했다. 희정의 폭넓은 창법에 대해 ‘은희의 청아한 창법 보다 선이 굵고 양희은의 지적인 창법 보다 폭발적’이라는 기사 내용이 눈에 띈다.
또한 제1회 KBS-TV ‘전국노래자랑’의 연출을 맡은 오용환 PD는 ‘클래시컬한 보이스로 포크송(Folk song)에서 흑인영가(Negro spirituals) 까지 폭넓은 레퍼토리를 구사하며 흡사 ‘마할리아 잭슨’을 연상케 한다’고 가수 윤희정을 평가하고 있다.

통기타음악의 진원지이자 캠프송의 못자리 ‘싱어롱 Y’통해 노래 꿈 키워

윤희정 데뷔 음반은 자작곡 <내님의 목소리>로 시작된다. 제1회 ‘KBS-TV 전국노래자랑’ 최우수상에 빛나는 윤희정, 그가 음악공부를 하던 시절에 ‘싱어롱 Y’가 있었다.
1960년대 우리나라 노래문화가 바꾼 ‘싱어롱 Y’, 이 ‘다함께 노래 부르기’ 운동은 레크리에이션(Recreation) 문화를 탄생시키며 ‘너도나도 기타 배우기 붐’으로 이어졌다.
 <사모하는 마음>, <석별의 정>, <버들피리> 등 외국 민요와 팝, 우리 민요를 오르간과 기타로 쉽게 반주할 수 있도록 편곡해 보급되었던 ‘다함께 노래 부르기 운동’에서 불려진 노래들은 대부분 미군 장교클럽에서 음악 활동을 했던 전석환씨가 채보, 발굴했다.
인천 인성여중&#8228;고에서 음악부장을 맡았던 윤희정 역시 인천 공보관에서 싱어롱 Y 활동을 했고 음반에 수록된 <석별의 정(Little Bitty Tear)>, <추억을 더듬으면(Try to Remember)>, <사랑의 기쁨 (Plaisir D’Amor)> 등은 당시 ‘싱어롱 Y’의 주요 레퍼토리였다.
‘전 국민의 음악선생’이자 <버들피리>의 작곡가이기도 한 전석환 선생은 인천 싱어롱 Y 시절, 가수 박상규의 소개로 윤희정을 처음 소개받았다고 기억했다. 아울러 <버들피리>와 <석별의 정>을 사전 허락 없이 음반에 수록, 야단을 쳤던 기억도 함께 떠올렸다.
1972년 4월에 발표된 이 독집음반이 자작곡인 <내님의 목소리>로 시작하듯 그는 싱어송라이터를 꿈꾸던 문학소녀이자 가수 지망생이었던 그, 아울러 전국노래자랑의 예선 출전곡인 자작곡 <눈 감으면> 역시 ‘윤희정-지다 남은 잎새(아세아레코드, AALS-00010)’ 음반의 뒷면 타이틀곡으로 실려 있다.
최우수상의 영예를 안겨준 노래 <세노야, 세노야>는 기독교 방송의 심야음악프로 ‘꿈과 음악 사이에’ 중 ‘고은 에세이’라는 코너의 배경음악이었다. <세노야>의 작곡가 김광희씨에게 노래 탄생 배경을 들어보았다.
 
“1970년에 기독교 방송에 ‘꿈과 음악 사이에’라는 음악 프로그램이 있었어요. 프로그램 중간에 고은 선생님이 직접 수필 한 편씩을 낭독하셨는데 방송국 측에서 배경음악으로 고은 선생님의 시로 된 노래를 만들자고 제안, 김민기씨에게 시 두 편을 주었어요. 그중 <가을 편지>는 김민기씨가 만들었고 <세노야>는 김민기씨가 제게 줘서 제가 만들게 됐죠. 노래를 갖다 준 그날부터 노래가 방송돼야 되는데 아무도 이 노래를 아는 사람이 없잖아요. 그래서 다른 분들이 연습할 동안에만 제가 불러 일시적으로 사용하게 된 거죠. 처음에는 김민기씨 기타반주로 제 목소리가 나갔고 이후 최양숙, 남성 듀오 도비두(도깨비 두 마리라는 뜻, 김민기 김영세)등이 부르게 된 거죠.”

이렇게 알려지기 시작한 <세노야>가 KBS-TV 전국노래자랑을 통해 불리어지며 최우수상까지 수상하는 장면을 지켜보기도 했다는 김광희씨, 그러나 그 수상자가 가수가 되어 음반까지 발표했다는 사실은 당시엔 몰랐다고 했다. “몇 년 전에 재즈가수로 변신한 윤희정씨를 만났는데 그때서야 자신의 데뷔음반에 그 노래를 수록했다는 얘기를 전해 들었다.”며 자신이 가수 양희은씨 보다 먼저 그 노래를 불러 음반으로 냈다는 사실을 매우 자랑스럽게 여겼다고 전한다.
또한 <보리피리>, <꽃반지 끼고> 그리고 번안곡인 <두 개의 작은 별(Zwei kleine Sterne)>, <즐거운 시절(Cotton Field)>, <내님아 (Let it Be)>, <잃어버린 사랑 (Lost Love)> 등 70년대를 장식했던 다양한 레퍼토리가 집대성된 이 음반을 통해 윤희정은 다양한 가창력을 보여준다.

싱어송라이터 윤희정에서 '윤희정 &Friends' 로, 그 영혼의 목소리

윤희정의 목소리는 어느 것 하나 흠잡을 수 없이 맑고 청아하다. 음정이 바르고 파워풀한 동시에 필요로 하는 정도만큼의 절제된 감정과 정확한 바이브레이션 등.
이후 윤희정은 국가대표 복싱선수 출신 작곡가 김기웅과 호흡을 맞춰 <둥글둥글 한세상>, <지다 남은 잎새>, 그리고 라디오 드라마 ‘제2차 세계대전’의 주제가인 <조용히 살다 조용히 가리라> 등을 발표한다.

아울러 1990년대 초 한국 재즈계의 선구자 이판근 선생을 만나 재즈가수로 변신한 윤희정은 이미 환갑을 훌쩍 넘겼지만 자신의 별명 '탱크^^' 답게 에너지가 넘친다. '판소리를 모르고 어떻게 재즈를 해?'라는 스승의 질타를 받고 우리 소리를 배우고, 꽹과리와 마라카사 등도 손에 익혔다.
한국적 정서가 배어 있는 재즈를 만들고 싶다는 그. 미국의 대표적 리듬 ‘셔플(shuffle)’과 우리나라 장단 ‘자진모리’를 합쳐 만들어낸 ‘셔플모리’가 그것이다. 단순히 남의 것을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정서와 소리를 함께 담아내는 그녀의 Jazz Spirit, 즉 Korean Jazz를 통해 ‘최고’로 평가받고 있는 그. 물론 여기서 ‘최고’란 '넘버 원(No.1)'이 아니라 자신만의 개성을 지닌 '온리 원(Only One)'이 되고 싶다는 것이다. 재즈 가수 윤희정의 멈추지 않을 열정, 그 원류를 통기타 한 대로 들려주는 이 데뷔음반에서 찾아본다.

70년대 청년문화 속 젊음의 연가, 그 슬픈 자화상을 담은 윤희정/에보니스 스플릿 음반 <별리/지난 여름날의 이야기>

   
 
70년대 젊은이들의 슬픈 자화상을 담은 <윤희정-별리/에보니스-지난 여름날의 이야기> 음반은 또 어떤가.
1973년 8월 1일, 국제기획이 기획한 이 스필릿 음반은 당시 두 가지 재킷으로 발매되었다. <별리/남기고 간 마음>을 타이틀로 한 윤희정 재킷 앨범과 <지난 여름날의 이야기/나 어린 시절>을 타이틀로 한 에보니스 사진의 재킷이다.
단순한 악기 편성으로 노래 자체에 더욱 집중할 수 있도록 한 이들의 노래는 슬프지만 마음을 따듯하게 한다. 이것이 이 음반을 통해 들려주는 둘의 공통점이다.
제1회 ‘KBS-TV 전국노래자랑(1971년)’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하며 ‘절대음’을 구사했던 윤희정(당시 19세. 본명 金明姬), 그리고 ‘슬픔의 극치’를 이루는 하모니라는 수식어가 늘 이름 뒤에 붙어 다니는 남성듀오 에보니스.
이 음반에서 에보니스의 주인공은 멜로디 파트의 윤영민과 화음을 맡은 최기원이다. 나직한 음성 밑에 화음을 넣는 ‘로우(low) 화음기법’을 구사하며 우수에 깃든 애절한 하모니를 들려준다. 보통 듀엣은 ‘하이 화음’을 쓰는 것이 보편적이다.

재즈가수로 변신한 ‘절대음’의 윤희정, 노래마다 얽힌 사연이 많다

현재 재즈가수로 변신한 윤희정 노래는 <별리(別離)>로 부터 시작, <남기고 간 마음>으로 이어진다. 당시 신예 작곡가 전태균의 데뷔작으로 먼저 가수 리리온과 황선남이 각각 발표했던 노래다. 작곡가 전태균은 이후 <실비 오는 소리에(이영화 노래)>, <저 높은 곳을 향하여(이영화 노래)>등을 발표하며 이름을 전재학으로 바꿔 활동하기도 했다. 전태균이 본명.

<은빛날개>는 서울대 농대 출신 작곡가 유병규가 작사, 작곡한 노래로 음반 뒷면에 그에 대해 간략히 소개되어 있다. 궁금한 분을 위해 그대로 옮기자면, “여기 ‘오, 나의 어린 시절과 ’은빛 날개‘의 작사, 작곡자 故 유병규(서울 농대 출신, 인천 출생, 현재 수원에서 농장 경영). 이 노래를 마지막 남기고 작년, 온양온천에서 여인의 머리칼을 손에 쥔 채 변시체로 발견(이 끔찍한 사건의 수수께끼는 아직 풀리지 않은 채)되어 온 세상을 깜짝 놀라게 했던 이 젊은 천재는 저 세상으로 가고 없어도 이 노래는 남아 요즘 대학가를 중심으로 많이 불려지고 있다.”고 소개하고 있다.
<쉐난도우(shenandoah)>는 1965년에 개봉한 서부영화 ‘쉐난도우(Shenandoah)’의 주제가로 Judy Garland, Harry belafonte, Tom Waits, Van Morrison, Tom Jones 그리고 최양숙, 김상국 등 국내외 많은 가수들에 의해 불리어진 명곡이다. 인디언 언어로 ‘멋진 계곡물(spruce stream)’ 또는 ‘높은 산악 사이를 흐르는 강’을 의미하는 이 단어는 ‘하늘의 딸(daughter of the skies)'을 가리키는 말이기도 한다. 윤희정이 직접 노랫말을 쓴 이 노래는 윤희정 데뷔음반 <세노야 세노야>부터 이후 발표하는 윤희정의 음반 곳곳에서 보여지 듯 그녀가 매우 아끼는 레파토리임이 짐작된다.
우리나라 통기타음악의 진원지인 ‘싱어롱 Y’ 출신답게 데뷔음반에 <버들피리>, <석별의 정(Little Bitty Tear)>을 비롯해 <추억을 더듬으면(Try to Remember)>, <사랑의 기쁨 (Plaisir D’Amor)> 등 ‘싱어롱 Y’의 주요 레퍼토리를 수록한 그녀는 이번 음반 역시 그 연속선상에서 전석환씨가 채보, 발굴한 노래들을 두 곡 부른다. 바로 <동산에 달이 떠오를 때면>과 <은파>. 물론 당시 전석환작사, 작곡 표기된 것은 명백한 오기(誤記)이다.
<동산에 달이 떠오를 때면>과 <은파>는 각각 우리에게 Edmundo Ros의 연주, 혹은 Kate Smith의 노래로 잘 알려진 <When the moon comes over the mountain>과  와이먼(Wyman) 작곡의 <silvery waves>에 우리 말 가사를 붙인 것이다. 특히 '은파(silvery waves)'는 '소녀의 기도', '엘리제를 위하여'와 더불어 어린이 바이엘이나 체르니에 수록될 정도로 매우 인기 높은 피아노곡이기도 하다.
1960~70년대 우리나라 노래문화를 바꾼 ‘전 국민의 음악선생’이자 <버들피리>의 작곡가이기도 한 전석환 선생은 필자와의 인터뷰에서 “이 <은파> 노랫말 역시 내가 작사한 것이 아니라 해방 이후 우리나라 음악교과서에 수록될 정도로 유명한 멜로디를 당시 사람들이 부르는 그대로 채보했다.”며 “특히 우리나라에서 매우 사랑받던 곡”이라고 밝혔다.
인천 싱어롱 Y 시절, 가수 박상규의 소개로 가수 윤희정을 처음 소개받았다고 기억하는 전석환 선생은 가수 윤희정에 대해 음의 밑기둥이 바르고 단단하며 독특한 바이브레이션이 매우 특별했던 음색의 소유자라고 평가했다.
외국 전래 포크송, 흑인 영가, CCR 등 다양한 장르를 거쳐 평소에 쓰지 않은 근육을 찾아내듯 현재 재즈가수로써 ‘Korean Jazz'를 지향하고 있는 윤희정. ‘음악은 어렵고, 쉽고의 문제가 아니라 듣는 그 순간에 감동이 없다면 죽은 음악이나 다름이 없다.’는 것이 그녀의 지론이다. 
 
‘슬픔의 극치’를 들려주는 애수의 하모니, 에보니스는...

   
 
단순하면서도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스트링과 아르페지오 주법이 돋보이는 남성 듀오 에보니스의 음악은 통기타 반주가 주는 매력, 그 자체다. 
멜로디 파트의 윤영민과 최기원의 화음이 절묘한 하모니를 이루는 남성듀오 에보니스는 처음 트리오로 출발했다. 또 한 명의 멤버는 석송. TBC 신가요박람회를 통해 발표한 정진성 작곡의 <가랑잎>은 이들이 처음 트리오로 부른 노래다.
1968년 ‘다함께 노래 부르기’ 운동의 선구자 전석환이 진행하던 ‘삼천만의 합창’ 공개방송 무대에서  활동을 시작한 이들은 차중광의 <내 사랑 미나(1969년)>에서 통기타 반주와 화음을 넣었고 이수미의 <여고시절(1972년)>, 방주연의 <그대 변치 않는다면(1972년)>에서 기타 반주와 백 하모니의 주인공도 이들이었다. 당시 멤버 중 윤영민은 <엠 아이 뎃 이지 투포겟(Am I That Easy To Forget)>의 번안곡을 취입하는 등 잠시 솔로로 활동하기도 했다.
‘에보니스’라는 팀 이름은 에브리브라더스의 <에보니 아이스(Ebony Eyes)>에서 착안한 것으로 신비로운 이미지를 강조, 팀명으로 정하고 멤버 중 석송이 빠진 듀오로 1970년 9월, ‘청개구리사운드 민요제’에 <모래 위의 발자국(김영광 곡)>으로 출전한다. 이후 73년 플레이보이배에서는 <사운드 오브 사일런스(The Sounds Of Silence)> 불러 특별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첫 음반 <빗소리>, <영원히 사랑하리>를 시작으로 <정든 배(1970년)>, <잘 가라고(1971년)>, <꽃사연(1971년)>, <물새의 노래/잘했군 잘했어(1972년)>, <진실(1972년)>에 이어 발표한 이 음반 <지난 여름날의 이야기(1973년)>, 그리고 계속해서 <헤어지는 사람들(1974년)> 등 음반을 발표하며 활발한 활동을 전개했다.
짧은 기간에 많은 곡을 취입, 부를 레파토리가 많아 미처 소화하지 못할 정도였다고 멤버들은 회고한다. 실제로 <진실(리메이크 정훈희)>, <가랑잎(리메이크 김만수-먼훗날)> 뿐 아니라 이 음반 타이틀곡 <지난 여름날의 이야기(리메이크 딱따구리 앙상블)>와 <둥글둥글 한세상(리메이크 김기웅, 허림, 윤희정 등)> 등이 모두 에보니스의 오리지날 취입곡들로 다른 가수들에 의해 히트했다.
그런가 하면 <잘했군 잘했군>이나 <정든 배>, <모래 위의 발자욱> 등은 오히려 이들이 무대공연을 통해 자주 불러 히트시킨 노래들이다.

70년대 후반, 멤버 중 윤영민이 솔로로 독립하자 최기원은 송철이와 함께 팀명을 ‘벗들’로 바꾸고 <반길 수 없네(1978년)>를 발표한 이후 90년대 들어 마지막 음반 <에보니스/행복한 기억밖에(1991년)>를 발표하며 주로 부산을 중심으로 라이브 무대에서만 활동했던 에보니스.
2000년대 들어 윤영민, 송철이가 빠진 자리를 대신해 이호상이 새롭게 합류, 2011년 5월 ‘에보니스 40주년 기념공연’을 가지기도 했다. 현재는 서울과 부산을 오가며 활동하고 있다.
이 음반에서 <사랑의 작은 집>과 <꿈이라 생각하오>를 작곡한 작곡가 이현섭씨는 “에보니스는 통기타 반주라는 단순한 소리를 배경으로 화음을 중시, 듣는 이들의 마음을 따뜻하게 한다.”고 말한다.
그래서일까, 이들 음악은 언젠가 와본 것 같은 익숙한 풍경 사이를 걷듯 매우 친숙하다. 늘 추억이 함께 하는... 오랜 기억 속에서 되살아나는 깊은 울림, 현재 새로운 대중문화의 주요 축으로 자리 잡고 있는 ‘중년문화'라는 실체가 왜 사람들 마음 한가운데에 깊이 자리하는지 이들의 음악을 들으며 조금은 알 수 있을 것 같다.

박성서 webmaster@newsmaker.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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