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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장 김창수’부터 ‘항거:유관순 이야기’까지…

기사승인 2019.03.05  00:0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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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속 독립투사들의 삶 어땠나

암울했던 일제치하에서 오직 조국의 광복을 꿈꾸며 자신을 희생했던 수많은 독립 운동가들이 있었고 이들의 삶을 소재로 한 영화들이 꾸준히 만들어져 후대에 깊은 울림을 선사했다. 국내외에서 일제 침탈에 항거한 독립투사들의 삶을 재조명하고, 우리 민족의 저항 정신을 되새기는 영화 작품들을 살펴본다.

신세영 기자 syshin@

▲ 영화 ‘고종황제와 의사 안중근’(사진=한국영상자료원 제공)

2019년은 3·1운동 및 대한민국임시정부(임정) 수립 100주년이다. 유관순 열사가 떠오르는 3·1 운동은 1919년 3월 1일부터 수개월에 걸쳐 진행된 일제 강점기 최대의 민족 독립운동으로, 국내는 물론 세계 각지에 거주하던 우리 민족이 자발적으로 나서 “대한독립 만세!”를 외쳤다. 이날 독립을 선언한 우리 민족은 정부가 필요하다는 공감대를 형성하면서 중국 상하이로 모였고, 3·1 운동 정신을 계승하며 “한성에서 기의(起義)한지 삼십유여일(三十有餘日)에 임시헌장을 제정한다”고 밝히며 4월 11일에 대한민국 임시정부(이하 ‘임정’)를 수립했다. 그동안 임정 수립일은 4월 13일로 알려졌으나, 지난해 4월 임정수립 기념사에서 이낙연 국무총리는 “최근 학계는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일이 국호와 임시헌장을 제정하고 내각을 구성한 4월 11일이므로 바로 잡아야 한다고 제안했다”고 밝혔다. 이에 법령 개정을 거쳐 올해부터는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일을 4월 11일로 수정해 기념한다.

‘대장 김창수’, ‘아아 백범 김구선생’
황해도 치하포에서 일본인을 죽이고 체포된 청년 김창수. 그는 재판장에서 ‘살인’이 아닌 국모의 원수를 갚은 것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결국 사형 선고를 받고 인천 감옥소에 수감된다. 고된 수감 생활 중에 억울한 옥살이를 하는 조선인들을 보며 현실에 눈을 뜨게 되는 김창수는 자신이 있어야 할 곳은 어디이며 해야 할 일은 무엇인지 깨닫게 된다.

▲ 영화 ‘아아 백범 김구선생’(사진=한국영상자료원 제공)

백범 김구 선생의 젊은 시기를 그린 영화 <대장 김창수>는 청년 김창수가 어떻게 독립운동가로 변모하는지에 초점을 맞춘다. 감옥에서의 625일 동안 그를 괴롭히는 사람은 같은 조선인인 감옥소장 강형식이다. 배우 송승헌이 일종의 안타고니스트(Antagonist) 역할을 맡아 화제가 되기도 했다. 청년 김창수는 1898년 3월 19일에 인천형무소에서 탈옥한 뒤 승려로 위장해 공주 마곡사에 몇 개월 숨어지냈다고 전해진다. 김창수는 마곡사 대광보전 앞에 향나무를 심었는데, ‘김구는 위명(僞名)이요, 법명은 원종(圓宗)이다’라고 쓰인 푯말이 꽂혀 있다. 탈옥 후 마곡사에서 머물던 김창수는 민중들을 교육하고 신민회를 조직하는 등 독립운동에 힘쓰며 ‘김구’로 개명하고, 보다 적극적인 독립운동을 위해 중국 상해의 임시정부 수립에 참여해 항일투쟁을 지휘한다. 상해 훙커우 공원의 윤봉길 의사 의거와 광복군 창설 등을 지휘하며 조국의 독립을 열망하던 그는 마침내 1945년 8·15 해방과 함께 조국으로 돌아온다. 백범 김구 선생의 자서전 <백범일지>를 기초로 한 전기영화 <아아 백범 김구선생>은 동학농민운동에서 8·15해방에 이르기까지 김구의 항일독립운동을 일대기로 보여준다. 한 평론가는 “독립운동의 역사적 맥락보다는 ‘인간 김구’를 부각해 다소 아쉬움이 남는다”고 평하기도 했다.

‘고종황제와 의사 안중근’, ‘도마 안중근’
이토 히로부미와 친일 대신의 압력으로 을사조약이 체결된 지 얼마 후, 고종은 비밀리에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열리는 만국 평화 회의에 비밀 특사를 보낸다. 하지만 회의 입장은 거절되고, 일제는 이 사건을 빌미로 고종의 퇴위를 강요한다. 을사조약을 개탄하며 인재양성을 위해 평안남도 진남포에 삼흥학교를 설립한 안중근은 도산 안창호의 연설을 듣고 독립운동에 뛰어든다. 1909년 10월 26일, 만주의 하얼빈 역에서 초대 통감 이토 히로부미를 암살하고 그 자리에서 체포된다. ‘한국영화의 영원한 아버지’로 불리는 김승호가 고종역할을 맡은 <고종 황제와 의사 안중근>은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암살하고자 결심하게 된 연유부터 사형이 집행된 날까지의 이야기를 다룬다. 영화는 1959년 개봉 당시 한국영화 흥행 5위를 기록했고, 문교부 우수국산영화상 우수작품 장려상을 수상했다. 또 7200만환의 제작비는 당시 국내 영화 최고 제작비를 기록했으며, 안양 스튜디오에서 대규모 세트 촬영으로 세간의 이목을 불러왔다. 한편 개그맨 서세원이 연출을 맡은 <도마 안중근>은 안중근 의사의 하얼빈 의거부터 시작해 사형집행까지의 과정, 일제에 의해 독살 당했다는 그의 장남 안문생의 이야기를 그린다.

‘상해 임시정부’, ‘암살’
뜻을 함께 하는 민족의 의인들이 있었다. 그들은 고종의 승하와 3·1 운동 등을 겪으며 우리 정부가 필요하다는 공감대에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세운다. 일제는 임시정부를 해체하고자 갖은 방해공작을 펼치지만, 이에 굴하지 않고 상해에서 남경, 다시 장사로 옮겨가며 독립운동 활동을 이어간다. 김구 선생과 윤봉길, 이봉창, 나석주 등 독립 투사들의 상해 임시정부 활동을 그린 <상해 임시정부>(1969년, 감독 조긍하)는 순국열사들의 희생으로 버틴 임시정부가 마침내 일본의 패망으로 대한민국이 독립을 맞이하기까지의 과정을 보여준다.

▲ 영화 ‘상해 임시정부’(사진=한국영상자료원 제공)

1933년 임시정부는 새로운 작전을 계획하는데, 바로 조선주둔군 사령관 카와구치 마모루와 친일파 강인국을 암살하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일본 측에 노출되지 않은 세 명을 암살 작전에 지목한다. 그들은 한국 독립군 제 3지대 저격수 안옥윤과 신흥무관학교 출신 속사포, 폭탄 전문가 황덕삼이었다. 김구의 두터운 신임을 받던 임시정부 경무국 대장 염석진은 작전 수행을 위해 이들을 차례로 찾아 나선다. 1270만 명 이상의 관객을 동원한 영화 <암살>은 재미와 의미를 함께 갖춘 영화다. 특히 거사전 단체사진은 영화의 주제를 집약적으로 보여준다. 최동훈 감독은 영화를 만들게 된 계기는 이름 없는 독립군들의 사진 한 장으로부터 비롯되었다면서 “자신에게 주어진 운명이 있고, 흔들림 없이 그 운명 속으로 걸어가는 한 사람의 이미지를 떠올렸다”고 말했다.

의열단 이야기…‘아나키스트’, ‘밀정’
조선인 출신 일본경찰 이정출은 무장독립운동 단체 의열단의 리더 김우진에게 의도적으로 접근한다. 김우진도 이 사실을 알면서도 그를 받아들이고, 두 사람은 속내를 감춘 채 가까워지는 듯 아닌 듯한다. 한편 의열단은 일제의 거점 시설을 파괴하기위해 경성으로 폭탄을 가져오는 계획을 세운다. 이 와중에 이정출은 의열단장 김원봉을 만나게 되고, 일본과 조선 중 어느쪽의 밀정에 서야할지 혼란스러워진다. 비슷한 시기 상해에는 가족을 잃은 소년 상구가 있었다. 그는 우연히 의열단 단원들을 만나 의열단에 합류하고, 일제의 고문 후유증으로 아편을 하게 된 세르게이와 독립자금 임무를 수행한다. 그러나 세르게이가 독립자금의 반을 가지고 잠적해버린다. 의로운 바를 맹렬하게 실천하는 조직이라는 ‘의열단(義烈團)’은 약산 김원봉 선생이 1919년에 윤세주, 이성우, 곽경(곽재기), 이종암 등의 동지들과 함께 중국 길림성에서 결성한 조직이다. 무장으로서 일제에 대항해 암살과 파괴 활동 등의 독립투쟁을 펼친 의열단은 비밀 결사 조직이었던 만큼 단원이 정확히 몇 명이었는지 알 수 없었다고 한다. 또 맹렬한 항거활동으로 일제에 큰 손실과 함께 두려움을 주었던 조직이었다. 이처럼 무장투쟁으로 독립운동을 이어나간 의열단의 투쟁은 드라마나 영화의 소재로 자주 쓰인다. 영화 <밀정>(2016년, 감독 김지운)은 실재 인물이었던 황옥의 ‘경부 폭탄 사건’을 소재로 의열단의 활동을 그렸고, <아나키스트>(2000년, 감독 유영식)는 허구의 이야기로 느와르풍의 비장미를 묘사했다.

▲ 영화 ‘이름없는 별들’사진=한국영상자료원 제공)

광주학생항일운동 ‘이름 없는 별들’
독립지사의 아들 상훈은 항일독립운동체 성진회의 멤버다. 어느 날 성진회에 오빠가 고등계형사인 영애도 가담한다. 그 뒤 ‘여러 가지 사건’이 일어난 뒤 학생들은 독립운동을 거사하기로 결정한 그날 밤 일본 형사에게 발각되고 만다. 광주학생항일운동은 1929년 11월 3일 광주에서 시작해 이듬해 3월까지 전국으로 퍼진 대규모의 학생 시위운동이다. 3·1 운동 이후 가장 큰 규모로 벌어진 항일운동으로 평가받고 있으며 현재 ‘학생독립운동기념일’로 제정한 법정기념일이다. 영화는 실제로 광주고등보통학교 학생들이 조직했던 성진회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당시 촬영에는 광주의 중·고등학교와 광주시민들의 전폭적인 협조가 이뤄졌고, 덕분에 영화에서는 보기 드문 대규모의 엑스트라와 세트 등을 활용하고 있다. 상당히 안정적인 촬영과 편집이 눈에 띈다. 50년대 한국영화의 상투적인 약점이라 할 수 있는 이야기상의 허점이 거의 보이지 않고 당시 영화와 비교해 높은 완성도를 지녔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밖에도 일제치하를 배경으로 한 영화로는 이준익 감독이 연출한 두 편 <박열>과 <동주>가 있다. <박열>은 일본 황태자 폭탄 암살을 도모했던 실존인물을, <동주>는 제목 그대로 윤동주 시인의 이야기를 다룬다. 또 지난 1월에는 조선어학회를 배경으로 한 <말모이>가 개봉해 흥행에 성공했다.

영원한 누나 유관순
고종의 승하와 2·8 독립 선언 이후 이화학당에 다니던 16세의 어린 소녀 유관순도 3·1 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한다. 학생들의 독립운동 참여가 늘어나자 일제는 학교에 휴교령을 내리고, 유관순은 어쩔 수 없이 고향 천안으로 내려간다. 고향에 온 유관순은 동네 사람들을 설득시켜 만세운동을 주도하고, 그렇게 ‘천안 아우내 만세운동’은 군중들의 참여로 성공적으로 이뤄진다. 그러나 유관순은 주모자로 잡혀가게 되고, 일경의 지독한 고문으로 처참하게 목숨을 잃는다. 우리들의 영원한 누나 유관순 열사의 영화는 두 편으로, 영화인이자 독립운동가로 알려진 윤봉춘 감독과 <맨발의 청춘>으로 유명한 김기덕 감독의 작품이 있다. 윤봉춘 감독은 3·1 운동 등으로 옥고를 치른 후 <아리랑>의 나운규 감독을 통해 영화를 시작한 후, <유관순>을 비롯해 <애국자의 아들>(1949년) 등 항일 투쟁 관련의 작품들을 남겼다. 특히 영화 <유관순>에서는 동네 아낙들과 함께 여성들의 힘으로 독립운동을 조직해나가는 유관순의 모습을 흥미롭게 묘사하고 있다.

올해는 조민호 감독의 <항거 : 유관순 이야기>와 신상민 감독의 <1919 유관순> 등 유관순 열사 관련 영화 두 편이 개봉한다. 3.1운동 100주년을 맞이하여 제작된 다큐멘터리 영화 <1919 유관순>은 만세로 나라를 되찾기 위해 간절한 기도이자, 소망을 펼쳤던 유관순 열사와 옥고를 치룬 8호감방의 여성 독립 운동가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이는 학생, 기생, 시각장애인, 과부, 만삭의 임산부, 간호사, 백정의 딸 등 유관순 열사 외에 숨겨진 여성 독립 운동가들의 삶을 100년 만에 재조명 하는 작품으로 대통령직속 3.1운동 및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기념사업추진위원회로부터 공식 후원을 받았다. <항거:유관순 이야기>는 평범한 열일곱 소녀였던 유관순의 마음을 섬세하게 들여다보는 것뿐만 아니라 세평 남짓의 작은 옥사 안에서 일제에 당당히 맞선 여성들의 우정과 연대라는 뜨거운 이야기를 담았다. 우리에게 1919년 3월 1일 만세운동은 교과서에서 접했던 익숙한 이야기지만 그 이후, 서대문 감옥에서 옥살이를 시작한 유관순과 8호실 여성들의 이야기는 중요성에 비해 지금껏 제대로 소개된 바 없다. 1년 후, 1920년 3월 1일에 만세운동 1주년을 기념하며 ‘여옥사 8호실’에서 만세운동이 시작됐다는 이야기 역시 우리에게 잘 알려지지 않았던 부분이다. NM

▲ 항거.유관순 이야기

신세영 기자 syshin@newsmaker.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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