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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은 못했지만 불매운동은 합니다”

기사승인 2019.09.05  15:4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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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보복성 수출규제에 따른 한일 갈등 여파가 문화계로 전반으로 번지고 있다. 전국 지자체들이 일본과 관련된 공연·문화행사를 속속 취소했다. 방송가에선 일본인 섭외를 꺼리거나 여행 프로그램에서 일본 소개가 금기시되며 몸 사리기에 나섰다. 일본 소설을 원작으로 한 연극이 취소되고 일본 책 신작 제작이 보류됐으며, 일본 영화를 배급하는 회사는 상영관을 잡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신세영 기자 syshin@

▲ 강경화 외교장관은 지난 7월 26일 오전 고노 타로 일본 외무대신과의 통화에서 “일본 정부의 수출 제한 조치를 즉각 철회할 것”을 촉구했다

한국 소비자들은 “독립운동은 못했지만 불매운동은 합니다”라며 인터넷과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불매 대상 물품과 대체품을 자발적으로 공유하며 불매운동 자체를 생활화하고 있다. 일본의 경제 보복 조치로 촉발된 불매운동을 넘어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를 규탄하는 촛불집회가 이어지며 극일(克日)이 일상의 화두가 됐다. 한국 대법원은 2018년 10월 30일 일제강점기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신일철주금(新日鐵住金, 현재 일본제철)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재판에서 1억 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강제징용과 근로정신대 등 강제동원 피해자 문제가 일본군 위안부, 사할린 동포, 원폭피해자 등 과거사문제와 더불어 한일관계의 최대 쟁점으로 부각됐다. 이에 한국 정부는 일본 기업과 한국 기업이 1대 1 기금을 마련하자고 제안했다. 하지만 일본 정부는 징용 피해자에 대한 배상 문제는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 체결 당시 한국 측에 제공된 5억 달러 규모의 경제협력을 통해 모두 해결됐다며 대법원의 판결이 국제법에 위반한다고 반발했다. 이후 일본은 7월 1일 한국을 상대로 반도체 핵심 소재 3가지 품목에 대한 수출 규제를 강화한다고 발표했고, 한달 뒤인 8월 2일 화이트리스트(백색국가)에서 한국을 배제했다. 일각에서는 강제징용 갈등에 대한 보복이라고 했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우리나라와 신뢰관계가 현저하게 손상됐다”면서 한국 정부가 강제징용피해자 문제에 대해 해결책을 제시하지 않았다고 문제 삼았다. 아베 정권은 위안부와 강제징용 보상을 이미 끝냈다고 주장하며 피해자들의 개인 보상에 대한 요구를 외면하며 일본기업을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한국에 대한 경제보복을 실시했다.

▲ 김서경, 김운성 작가의 평화의 소녀상

日 국제예술제, ‘위안부 소녀상’ 전시 중단 파문
8월 1일~10월 14일 아이치현 나고야 일대에서 열리는 일본 최대 규모 국제예술제인 ‘아이치 트리엔날레 2019’에서는 ‘평화의 소녀상’이 출품된 ‘표현의 부자유전·그 후’가 출품됐다. 아이치 트리엔날레는 60만 명 안팎이 관람하는 일본 최대 규모의 국제예술제다. 그러나 주최 측은 우익 세력들의 항의·협박이 쇄도하고 있어 안전이 우려된다는 이유로 사흘 만에 전시를 중단했다. 안세홍 작가의 위안부 피해자 사진 등 전시회 출품작이 모두 철거됐으며, 국제적으로 표현의 자유를 막는 폭거라는 비난이 쏟아졌다. NHK는 지난 1일 이번 전시와 관련해 철거를 요구하는 등 비판적 전화가 약 200건, 이메일 500건 등이 왔으며 2일에도 거의 비슷한 정도의 전화와 이메일이 왔다고 보도했다. 일본에서 ‘평화의 소녀상’이 내려지는 것은 2012년 도쿄 도립미술관 전시에서 소형 소녀상이 정치적 표현물이라는 이유로 철거된 데 이어 두 번째다. ‘평화의 소녀상’은 서울의 주한일본대사관 앞 평화의 소녀상과 같은 모습이다다. 김운성·김서경 작가의 조각 작품으로 작가들이 2015년 일본 시민들에게 맡긴 것이다. 김운성 작가는 “작가에게 어떤 한마디도 없이 전시회를 중지한 것은 ‘표현의 부자유’ 전시를 일본이 그대로 인정한 것”이라며 일본 정치권을 비판했다. 이에 트리엔날레에 참여 중이던 한국의 박찬경·임민욱 작가가 자신들의 작품을 전시에서 빼라고 요청했으며, 지난 15일에는 해외작가 9개 팀이 ‘표현의 부자유전·그 후’ 전시가 재개될 때까지 자신들의 작품을 전시하지 말 것을 요청했다. 박소현 서울과학기술대학교 교수는 “현재 진행 중인 아이치 트리엔날레 사태는 최근에 세계적으로 벌어지는 예술 통제를, 검열의 경향을 잘 보여주는 불행한 사례”라고 강조했다.

공연계 “일본 원작 연극 취소, 티켓 오픈 연기”
반일(反日) 감정의 여파가 공연계까지 미치고 있다. 일본 작가 히가시노 게이고의 동명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연극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 공연이 취소됐다. 제작사 달컴퍼니는 20일 공식 SNS를 통해 “2019년 10월 예정돼 있던 연극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의 공연을 취소하게 됐다”며 안내문을 올렸다.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은 ‘남몰래 고민하는 현대인들에게 전하는 따뜻한 위로’라는 기획의도로 10월 8일부터 내년 1월 1일까지 대학로 드림아트센터 1관에서 재공연될 예정이었다. 달컴퍼니는 “최근 일본과 정치·경제적인 문제로 악화되고 있는 양국 관계와 그로 인한 범국민적 분노에 깊이 공감하며, 작품을 통해 전달하고자 했던 메시지와 별개로 현 시점에 본 작품을 올리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판단했다”며 공연 취소 이유에 대해 설명했다. 2018년 8월 초연된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은 좀도둑 아츠야, 쇼타, 코헤이가 나미야 잡화점의 상담창구에서 사람들의 고민을 상담해주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는다. 원작은 전 세계 1200만부 판매고를 올렸으며, 국내 출간된 히가시노 게이고 소설 중 가장 많이 판매되기도 했다. 이번 공연의 취소는 연극 ‘빙화’에 이은 두 번째다. 국립극단은 ‘근현대 희곡의 재발견’ 시리즈 열한 번째 작품으로 ‘빙화’(임선규 작, 연출 이수인)를 9월 27일부터 10월 13일까지 백성희장민호극장에 올릴 계획이었지만 지난 5일 취소 사실을 알렸다. ‘빙화’(1940)는 일제강점기 연극통제정책에 따라 시행된 ‘국민연극제’ 참가작으로, 친일적인 요소를 담은 희곡이다. 임선규 작가는 2009년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발표한 친일반민족행위 705인 명단에 포함됐다. 오는 9월 27일~11월 17일 KT&G 상상마당 대치아트홀에서 재연되는 연극 ‘왕복서간(往復書簡):십오 년 뒤의 보충수업’(이하 ‘왕복서간’)도 눈치 보기에 한창이다. 지난 4월 초연된 ‘왕복서간’은 일본 추리 소설가 미나토 가나에의 동명소설의 3편 중 ‘십오 년 후의 보충수업’이 원작이다. 중학교 동창이자 지금은 오래된 연인 사이인 준이치와 마리코가 편지를 주고 받으며 15년 전 발생한 사건의 진실을 밝혀가는 형식의 서스펜스극이다. 공연 기획사 벨라뮤즈는 8월 초 티켓 오픈을 진행할 예정이었지만 한일 관계가 악화되자 일정을 연기했으며, 지난 22일 조용히 티켓 판매를 시작했다.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에서 8월 25일까지 공연된 ‘루루섬의 비밀’은 지방과 연말 공연이 논의 중이었으나 무산됐다. 작품은 한국 인형극단 예술무대산과 일본 그림자 전문극단 카카시좌가 2013년부터 5년간의 제작 워크숍을 거쳤으며, 대사 없이 진행되는 인형극이다. 안산문화재단이 운영하는 청소년 극단 고등어는 8월 말 일본 돗토리(鳥取)현 돗토리시에 있는 ‘새의 극장’에서 진행할 계획이던 일본 극단과의 교류 행사를 취소했다. 한일 양국 청소년들이 서로의 나라를 방문해 연극을 발표하는 행사다. 이 외에도 9월 3일 개막하는 ‘2019 원주 다이내믹 댄싱카니발’도 6개 일본팀의 공연을 모두 취소했다.

“일본 소설 안 읽어요”
한국은 일본 책을 가장 많이 번역·출판하는 나라 중 하나로 한일 관계 경색이 지속되면 판매량에도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다. 8월 12일 인터파크 도서에 따르면 이달 첫째 주 일본 문학 분야 도서 판매량은 6월 마지막 주 대비 38% 감소했다. 일본 소설 스테디셀러인 히가시노 게이고의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의 7월 판매량은 6월 대비 22% 감소했다. 도서출판 마음산책은 최근 교정 중이던 일본 유명 작가의 음식 에세이 작업을 중단했다. 오랜 번역과 표지 작업까지 끝낸 쓰노 가이타로의  문화인류학서 <독서와 일본인> 출간을 미뤘다. 도서출판 은행나무는 출간이 코앞이던 소설가 구보 미스미의 신작 제작을 보류했고, 오쿠다 히데오의 <공중그네> 리커버판 출시를 연기했다. 도서출판 비채는 <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로 호평을 받은 마쓰이에 마사시의 신작과 작가 초청을 계획했으나 연기를 고려 중이다.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은 오는 10월 1∼2일 일본 도쿄 신주쿠에 있는 한국문화원에서 ‘찾아가는 일본 도서전’을 열 예정이었으나 국민감정 등을 고려해 행사 취소를 검토하고 있다. 반면 일본과 관련된 역사·사회서가 높은 관심을 받고 있다. 이영훈 전 서울대 교수가 쓴 <반일 종족주의>(미래사)는 8월 둘째 주 인터넷 교보문고 종합베스트셀러 1위를 차지했다. 최근 출간된 일본 우경화와 과거사 인식의 퇴행을 비판하는 대담집인 서경식·다카하시 데쓰야의 <책임에 대하여>을 비롯해 <일본제국 패망사>(글항아리), <그 사람, 김원봉>(도서출판 그림씨), <의열단, 항일의 불꽃>(두레) 등 항일 관련 책과 <아시아태평양전쟁에 동원된 조선의 아이들>(섬앤섬) 등 역사를 담은 책이 주목을 받고 있다. 예스24에 따르면 <사쿠라 진다>, <학교에서 가르쳐주지 않는 일본사>, <국화와 칼> 등 과거 출간된 일본 관련 서적도 판매가 3~6배 급증했다.

스크린에 부는 반일 바람
영화계도 예외가 아니다. 8월 7일 개봉한 일본 영화 <나는 예수님이 싫다>는 정치적 영화가 아니지만 상영관을 확보하기가 쉽지 않은 않았다. <나는 예수님이 싫다>는 제66회 산세바스티안국제영화제에서 22세의 나이로 역대 최연소 신인감독상을 수상한 오쿠야마 히로시 감독의 첫 장편 연출작이다. 영화 <극장판 도라에몽: 진구의 달 탐사기>의 개봉일이 결국 연기됐다. 일본 애니메이션 ‘도라에몽'의 극장판 시리즈’ 39번째 작품 <극장판 도라에몽: 진구의 달 탐사기>는 달 탐험을 떠난 도라에몽과 진구의 모험을 그린다. 배급사 측은 7월 25일 공식 SNS를 통해 “8월 개봉 예정이었던 <극장판 도라에몽: 진구의 달 탐사기> 개봉이 연기됐다. 더불어 공식 SNS를 통해 진행됐던 시사회 및 포토 인증 이벤트 역시 부득이하게 중단됐으며 이벤트 참여를 위해 남겨주신 개인 정보는 모두 안전하게 삭제 조치했다”고 전했다. 이어 “이벤트에 참여해주시고 개봉을 기다려주신 많은 분들께 깊은 감사와 양해의 말씀을 드린다. 추후 새로운 소식이 있을 경우 빠르게 안내드리도록 하겠다”고 덧붙였다. ‘2019 충북국제무예액션영화제’는 일본 영화 <자토이치>를 초청작에서 제외하고, 모티브로 삼았던 공식 포스터를 교체했다. 일본 보이콧 영향이 항일 콘텐츠를 살렸다. ‘군위안부’ 강제동원을 부정하는 일본 우익들의 논리를 반박하는 다큐 <주전장>은 개봉관이 처음 30개보다 최종 약 60개관으로 늘었다. 지난 7일 개봉한 영화 <봉오동 전투>(감독 원신연)는 450만 관객을 돌파하며 손익분기점을 넘었다. <봉오동전투>는 1920년 6월, 죽음의 골짜기로 일본 정규군을 유인해 최초의 승리를 이룬 독립군들의 전투를 담는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인 김복동(1926~2019) 할머니의 27년 투쟁을 담은 다큐멘터 영화 <김복동>은 반일 감정이 격화되면서 개봉 8일 만에 관객 5만 명을 모으기도 했다.

방송계 역시 빨간불이 켜졌다. 방송사나 제작사는 아예 해외 촬영지 목록에서 일본을 제외하고 있다. KBS 2TV <배틀트립>과 tvN <더 짠내투어> 제작진은 “예정된 방영분도 없고 당분간 대상지로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있다”고 전했다.
한국화랑협회에 따르면 오는 9월 말 코엑스에서 예정된 한국국제아트페어(KIAF) 참가 갤러리 중 한 곳이 구사마 야요이(草間彌生) 대신 다른 국내 작가 작품을 걸겠다고 통보했다. 서울 종로구 삼청동 한 갤러리는 이번에 그룹전을 준비하면서 일본 작가를 러시아 작가로 변경했다.
일본의 경상수지 흑자 기조에 그나마 도움을 준 여행수지도 타격을 받는다. 일본식 회계 기준으로 2018년 회계연도(2018년 4월~2019년 3월)에 일본의 여행수지는 사상 최대 수준인 2조 4890억 엔의 흑자를 기록했다. 여기에는 한국인이 일본 여행에서 쓴 돈이 크게 기여했다. 2018년 일본을 방문한 한국인은 754만 명, 지출액은 51억 7000만 달러(약 5498억 엔)에 이르렀다. 그러나 일본의 경제보복 조치로 한국 내 반일 감정이 고조되면서 일본 여행객이 급감하고 있다. 현대경제연구원은 ‘한일 여행 절벽의 경제적 피해와 시사점’이라는 보고서에서 한일 갈등이 내년까지 지속될 경우 한국인의 일본 여행이 외환위기 직후 수준으로 줄고, 이에 따라 일본 지방의 관광산업과 기타 내수 관련 산업에 영향을 줘 내년 일본 경제성장률은 0.1%포인트 하락할 것이라고 추정했다. NM

신세영 기자 syshin@newsmaker.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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