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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이 마지막 도착역이다”

기사승인 2020.05.07  00:2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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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빛의 예술가’ 강정완 화백

세계적으로 ‘빛의 예술가’, ‘색의 마술사’라 일컬어지는 강정완 화백의 행보가 화제다. 강정완 화백은 국제 교류를 통해 한국 미술계의 위상을 높이고 한국 빛깔의 신비를 세계에 소개해왔다.

차성경 기자 biblecar@

국전 대통령상, 파리 위마니떼르드 프랑스대상전 은상, 몬테카를로 국제현대미술대전 모나코 국왕상, 대한민국 옥관문화훈장, 대한민국 미술인상 특별상 명예공로상 등을 휩쓸며 미술계의 거목으로 자리매김한 강정완 화백. 이제 곧 아흔을 바라보는 나이, 예술가의 길로 접어든 지 올해 70주년, 그의 예술혼은 여전히 뜨겁게 타오르고 있는 중이다. 강정완 화백을 만나 자세한 얘기를 들었다.

▲ 강정완 화백

한국인 최초로 그랑프리인 레니에 3세상(모나코국왕상) 수상
1933년, 경남 산청의 한 산골마을의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난 강정완 화백. 화가로서의 꿈을 잠시 접어두고 경남도의 대표적 교육기관인 진주사범학교를 졸업하고 당시 초등학교 교사로 봉직했던 강 화백은 아동 심리를 이용한 교육미술에 특별한 관심을 갖고 외국 서적을 통해 발 빠르게 새로운 이론과 경험을 습득하고 제자들을 육성, 제자들이 국내외 미술대회에서 최고상을 휩쓸며 교육 미술지도자로서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40여 회의 국제아동미술대전의 최우수 지도상, 15회가 넘는 미술교육 공로상 등은 당시 그가 얼마나 뛰어난 지도자였는지 보여주는 단적인 예다. 특히 제자들을 지도하며 가슴 속 깊이 묻어두었던 그림에 대한 열정의 불꽃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지게 된 강 화백은 매년 국전에 도전해 수차례 낙선과 입선, 특선을 거듭해오다 1973년 국회의장상을, 1975년 국전 대통령상을 수상하며 본격적인 화가의 길로 들어섰다. 특히 국전 대통령상 수상과 동시에 22년간 몸 담았던 교직을 떠난 강정완 화백은 이듬해인 1976년 정부의 국비유학으로 프랑스 유학길에 올라 1981년까지 파리 국립미술학교에서 현대회화를 수학했다. 그림에 대한 열정 하나로 떠났던 프랑스 유학이지만 현실은 녹록치 않았다. 강 화백은 한국에 있는 아내와 자식들까지 이국에서 부양해야 하는 부담을 감당해야만 했다. 결국 어쩔 수 없이 파리 몽마르트 언덕에서 관광객을 대상으로 1년 6개월 동안 Paris 관광지와 초상화를 그리는 아르바이트를 하며 생계를 유지했을 정도다. 불행 중 다행으로 강 화백이 그렸던 초상화 작품은 그곳을 여행 오는 일본인 관광객들에게 인기 절정이었다. 특히 일본어를 유창하게 할 수 있었던 강 화백에 대한 입소문이 나기 시작하면서 일감은 끊이지 않았고 덕분에 파리 유학생활에서도 큰 도움이 되었다. 이후 1978년 세계 98개국 5천여 명의 화가들이 참가한 몬테카를로 국제현대미술대상전에서 한국인 최초로 그랑프리인 레니에 3세상(모나코국왕상)을 수상하며 유명화가의 반열에 올라선 이후에야 비로소 그는 생활고에서 벗어나 파리에서 안정적인 생활이 가능하게 됐다.

▲ 몬테카를로 국제현대예술전 모나코국왕 대상 수상작

강정완의 작품세계는 공간의 창조자
“회화란 무엇이며, 창작이란 무엇인지를 이제 겨우 조금 알 것 같다. 인생에 있어서 완성이란 것은 없다”면서 “‘내겐 언제 붓을 놓을 것이냐’만이 남아 있을 뿐, 끝은 존재하지 않는다. 하면 할수록 알면 알수록 나는 그림이 무섭고 두렵기만 하다.” 강정완의 작품은 아름다운 색채감이 특징이다. 기법 면에서도 가히 독창적인 그의 화풍은 간단한 덧칠이 아니라 시간의 층위가 화석처럼 새겨진 기록의 캔버스를 만들어 낸다. 또한 화폭에 새겨지는 화려한 색채는 환상적인 부동 내지는 부의 형상미와 그 표현기법에 따라 생동감 내지 생명감이 대작 화면에 온통 충만하는 매우 특이하고 세련된 형상으로 실현되어 있다. 자연에 순응한 대상으로서의 절대성인 아카데미즘 회화양식을 추구해 민족성, 향토성과 함께 지역문화의 맥을 그려왔던 초기를 거쳐 추상적인 톤의 심상풍경들이 환상적 여운으로 가득하며 색상의 파격적인 표출과 성스러운 우주에로의 심호흡이 서로 교차하는 작품 속에서 강 화백은 모더니즘의 유혹에서 벗어나 한국 고유의 전통의 정수를 잊지 않고 파리에서 얻어진 이국적인 것들과 접목시킨 화법을 추구하고 있다. 강 화백은 동서양의 초서체 기법을 통해 상징성과 실재성과의 관계, 기호와의 기교, 영웅적인 제스츄얼리즘 등 공허한 여백으로 끝나기 쉬운 몸부림에서 탈피하려고 무단히 노력한 작품세계를 선보였다. 특히 생동감과 생명감이 살아 숨 쉬며 추상적이지만 마음속에 상상할 법한 심상 풍경들을 환상적으로 표현해낸 그는 대한민국의 정서를 모더니즘과 적절하고 조화롭게 표현하며 자신만의 화풍을 구축했다.

▲ 회고- 국전 대상 대통령상 수상작

강 화백은 “화가는 절대 겸손해야 하며 침묵으로 작품제작에만 몰두해야 한다”면서 “창작이란 할수록 어렵다. 살과 뼈를 깎아야만 하는 멀고도 험한 길이 창작의 길이라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고 피력했다. 이러한 강정완 화백의 작품에 대해 평론가 로베로 브리나는 “정신적인 약동이 창작의 경지를 지향하고 순간순간 영감을 전달하고 있다”고 했으며 가스통 디엘은 “강정완의 작품세계는 공간의 창조자다”고 했다. 또 우에무라 다카치오는 “동양적인 감각과 빛으로 내면생활 그 자체를 훌륭하게 표현하는데 이른다”고 했다. 프랑스 일간지인 르 피가로지는 “환상적인 기법과 초록색 바탕 위에 핑크색 빛깔이 인상적이며 그는 색의 마술사다”고 표현했으며, 르 몽드지는 “화사한 색채와 정신적인 약동이 즐거움과 희망을 주는 동시에 시적 영감을 깊이 전달해주고 있다”고 했다. 국내에서도 미술평론가 오광수는 “강정완의 작품 제목은 그림의 명제라기보다는 시의 구절이다. 그림과 시가 분리되지 않는 세계를 지향하려는 작가의 독특한 미학의 산물이며 비록 그가 구사하고 있는 매재는 서양적인 것이긴 하지만, 그것을 운용하는 정신은 동양의 경지로서의 심의의 세계임을 말해주는 것이다”고 평한 바 있다.

세계가 주목하는 작가로 자리매김한 미술계 거목
치열한 현실에서의 삶과 끊임없는 예술적 고뇌를 통해 자신만의 독창적인 작품세계를 구축한 강정완 화백은 오늘날 전 세계가 주목하는 작가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1977년 파리 중심가에 있는 100년 이상의 역사를 가진 샤갈이 전시한 ‘마르셀 베른하임 화랑’에서 초대 개인전을 가졌던 강 화백은 1987, 1988년에는 파리시청에서 운영하는 ‘Cite des Arts de Paris 미술관’에서 개인초대전을 두 번이나 가졌고, 1977년에는 ‘Paris Salon de Mai국제전’에 초대, 1981년에는 몬테카를로 현대미술관에서 열린 ‘역대 모나코 국왕 수상작가 초대전’ 등 권위 있는 단체전에 많이 초대받았다. 이후 1989년 노태우 대통령 부부의 프랑스 국빈 방문 시에는 미테랑 대통령의 초청을 받아 엘리제궁에서 베푼 만찬회에 초대받았으며 1991년 이해원 서울시장이 파리시청에 방문했을 때는 자크시락 시장의 초청을 받는 등 프랑스 정부가 인정하는 작가로 활동했다. 특히 한국의 젊은 유학생들이 초창기 프랑스 유학을 할 당시 힘들고 고통스러웠던 자신의 전철을 밟지 않도록 강 화백은 유학생들이 체류를 연장할 때에는 신원보증을, 방을 구할 때에는 재정보증을 서주고, 프랑스 작가협회 신청 절차와 개인전 갤러리 추천 및 작업실 문제 등에도 많은 도움을 주었다. 지난 1990년 파리와 1991년 서울에서 ‘파리한글학교 설립기금마련 전시’를 개최했을 때에는 작품 100호, 50호를 기증하는 등 헌신적으로 참여했던 강 화백은 재외국민교육의 중요성을 깊이 인식하고 교포2세 교육진흥에 공헌한 바가 커 윤형섭 교육부장관으로부터 공로표창을 받기도 했다.

▲ 추석날- 파리 국제현대회화제 초대작품

2000년부터 프랑스와 한국을 오가며 창작생활을 해왔던 강정완 화백. 그는 지난 2002년부터 성남시 분당구에 작은 작업실을 마련하여 주로 국내에서 체류하며 작품 활동을 해왔다. 2008년부터 (사)한국미술협회 상임고문 직책을 위촉받아 한국 미술 발전을 위해 적극적으로 활동 중인 그는 (사)세계미술연맹 상임고문, (사)한국구상작가회 고문, 국전작가회 고문, 성남 아트센터 운영위원회 고문, 탄천문화포럼 100인회 운영위원회 고문, 성남지역 남송국제아트페어 초대 조직위원장, 성남시문화상 심사위원을 역임하며 한국 미술 발전은 물론 지역 미술 활성화를 위해 적극적인 활동을 펼쳐왔다. 이에 젊은 후배작가들의 개인전, 단체전의 개막식에 초청받아 축사는 물론, 좋은 작가들을 해외의 권위 있는 전시회에 많이 참가시켰고, 경제적으로 어려운 작가들의 작품을 판매하는데 헌신적으로 도움을 주었다. 또한 지역문화 발전을 위해 자신의 대작 3점을 성남문화재단에 기증했으며, 소외된 지역을 찾아가는 미술프로그램 운영 제의, 선-후배 전시에 찾아 격려하기를 실천하는 등 남다른 봉사정신으로 성남 문화 대중화의 활성화를 위해 노력해왔다. 아울러 성남문화재단 후원회를 결성하는데 그 중심에 서서 기업후원을 유치하고 공연문화와 미술전시문화 활성화에 기여한 공로가 커서 성남시장으로부터 문화상을 받았으며 성남문화재단 대표이사로부터 공로패를 받은데 이어 광복70년 특별기획 ‘한국을 이끄는 혁신리더’로 선정되기도 했다. 한편 프랑스 정부에서 화실과 평생 영구체류증인 CARTE DE RESIDENT PERMANENT 시민권의 특혜도 받고 있는 강정완 화백은 “저에게 있어 삶의 터전은 두 곳일지 몰라도 저의 마지막 종착역은 오로지 하나다”며 “바로 그림이 저의 마지막 도착역이다”고 피력했다. 이어 강정완 화백은 “앞으로도 한국 미술과 지역 미술문화 발전에 기여할 방도를 적극적으로 모색하고 힘을 쏟을 것”이라고 다짐했다. NM

▲ 소망,사랑,믿음 (Espoir,Amour, Foi 200×530cm, Oil on canvas, 1981-아주대병원 소장)


 

 

차성경 기자 biblecar@newsmaker.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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