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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플레이션 공포 현실화되나

기사승인 2020.05.07  00:3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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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유국의 증산 러시 본격화되며 국제유가 급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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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유가가 바닥을 치고 있다. 주요 산유국들의 ‘증산 러시’가 본격화하면서다. 배럴당 10달러대까지 무너져 한 자릿수 대까지 떨어질 거란 전망도 나온다. 이를 버티지 못한 미국 셰일기업들의 줄도산으로 ‘D(디플레이션)의 공포’가 현실화할 거란 우려도 제기된다.

이종서 기자 jslee@

유가 하락은 우리나라 같은 석유 수입국에 보통 호재지만 지금의 상황은 전혀 그렇지 않다. 연료 수요 급감으로 공급은 과잉임에도 소비는 뚝 떨어졌다. 세계 1, 2위 인구 국가인 중국과 인도가 지금껏 꾸준히 정제능력을 확대한 것도 악재다. 전문가들은 이미 석유제품 공급이 넘쳐나 정제마진이 크게 줄었는데 코로나19까지 겹치면서 이번 유가 폭락은 과거와는 다르다고 분석한다.

코로나 사태 진정돼도 저유가 이어질 듯
사우디아라비아는 원유 수출량을 사상 최대로 확대하겠다고 공언했다. 1980년대 북해 유전 개발 당시 생산량을 75%나 줄이면서 유가 방어에 나섰던 사우디는 효과를 거두지 못하고 적자만 남겼던 경험이 있다. 이것이 트라우마로 작용했을 거란 분석이다. 러시아도 앞서 미국에 천연가스 사업 확대를 저지당한 바 있어 칼을 갈고 있다. 대한석유협회 관계자는 “산유국의 카르텔은 빈번하게 깨지고 결국 합의를 어기는 나라가 이득을 보는 구조라서 현재 상황은 당분간 이어질 수밖에 없다”고 내다봤다. 코로나19 사태가 잠잠해진 뒤로도 저유가는 이어질 거란 결론이다. 미국 셰일업체들이 산유국들의 공세를 버티지 못할 거란 우려가 나온다. 에너지 컨설팅회사 우드매킨지에 따르면 올해 배럴당 원유 평균 생산단가는 미국셰일이 53달러 정도다. 미국이 아무리 생산단가를 개선해도 현재 상황에서는 도저히 수익을 낼 수 없다. 정유업계 관계자는 “이례적인 저유가가 이어지면 미국 고위험 채권 시장의 10%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미국 셰일업체들의 연쇄부도로도 이어질 것”이라면서 “기업들의 생산비용 감소와 제품가격 하락으로 디플레이션 압력이 가중돼 경기가 침체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국내 정유사들은 이미 유탄을 맞았다. 막대한 재고손실을 떠안고 있다. 손지우 SK증권 애널리스트는 “올 1분기 에쓰오일과 SK이노베이션은 각각 5218억원, 1조 434억원의 영업적자를 기록할 것으로 전망된다”고 말했다. 정유 4사의 손실을 합치면 2조원 이상의 적자가 날 것으로 보인다. 최근 정제마진의 움직임도 심상치 않다. 3월 셋째 주 정제마진은 -1.9달러, 넷째 주에는 -1.1달러를 기록했다. 국내 휘발유값은 지난 4월1일 보통휘발유 기준 1388원까지 떨어졌다. 영업을 할수록 손해만 보고 있는 상황이다. 유승훈 서울과학기술대 에너지정책학과 교수는 “국내 정유사들에 직접적인 재정지원은 어렵지만 환경보전시설 등에 대한 투자세액공제율 등을 한시적으로 상향 조정하는 식으로 지원하는 방안을 고려해 볼 수 있다”면서 “정유사들이 살아남으려면 미래 먹거리를 위한 연구개발에 투자해야 하며 현재 규제가 체질 개선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규제 샌드박스 등의 방법으로 해결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사우디, 미국 등 원유 감산규모 2000만배럴 주장
사우디아라비아와 러시아의 원유 감산 합의 세부사항이 아직 확실히 나오지 않은 가운데 4월9일(이하 현지시간) 유가는 한때 급상승했지만 이후 상승폭을 모두 반납하고 하락세로 돌아섰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OPEC+’(석유수출국기구와 10개 주요 산유국의 연대체) 화상회의가 진행된 이날 사우디와 러시아가 원유 대규모 감산에 ‘원칙적으로’ 합의했다고 보도했다. 일각에선 생산국들이 하루 2000만배럴 감산에 합의하리라고 전망했다. 이에 한때 뉴욕상품거래소(NYMEX)에서 5월 인도분 서부텍사스산원유(WTI)는 한때 12% 상승한 배럴당 28.36달러에 거래됐다. 런던 ICE 선물거래소에서 6월 인도분 브렌트유는 한때 8.5% 상승, 배럴당 35.79달러에 거래됐다. 보도에 따르면 전체 감산 규모 중 사우디는 4월 생산량 대비 일 400만배럴, 러시아는 일 200만배럴 감축에 동의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다른 회의 참가국들이 아직 합의에 이르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구체적인 합의 내용은 불투명하다. 이에 유가는 초반 상승분을 반납하고 다시 하락세로 돌아섰다. 마켓워치에 따르면 NYMEX 5월 인도분 WTI는 배럴당 23.24달러, ICE 6월 인도분 브렌트유는 배럴당 31.66달러로 떨어졌다가 각각 반등을 시도 중이다.

WSJ는 OPEC 당국자들을 인용, “이번 회담은 주요 (감산) 수치 외 세부사항은 거의 없는 채 끝날 것으로 예상된다”고 전망하기도 했다. 이날 회의는 지난 4월6일 한차례 연기를 거쳐 열렸으며, 유가 전쟁을 벌여온 사우디와 러시아 간 합의 여부에 관심이 쏠렸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전날인 4월8일 “러시아와 사우디가 필요 없는 시기에 생산량을 늘렸다”라며 합의를 촉구했었다. 미국과 사우디아라비아, 러시아가 지난 4월13일 OPEC+의 5~6월 원유 감산규모가 하루 최대 약 2000만배럴에 달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각국의 주장이 현실화된다면 OPEC+의 감산 규모는 4월12일 합의한 하루 970만배럴보다 2배 증가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이날 트위터를 통해 “협상에 참여하고 있는 입장에서 조심스레 말하자면 OPEC+가 검토하는 감산 규모는 일반적으로 보도되고 있는 하루 1000만배럴이 아니라 하루 2000만배럴”이라고 말했다. 이어서 트럼프 대통령은 “만약 이에 근접한 일이 일어나고 전 세계가 코로나19로 인한 재앙에서 벗어나 다시 경제활동을 시작한다면 에너지 산업은 현재 예상되는 것보다 빠른 속도로 다시 강해질 것”이라고 자신했다. 그러면서 “나와 함께 이 큰 산업을 정상 궤도에 올려놓은 모든 이들, 특히 러시아와 사우디아라비아에 감사한다”고 덧붙였다. 알렉산드르 노박 러시아 에너지장관 또한 같은 날 5~6월 세계 원유 감산 규모가 하루 1500만~2000만배럴에 이를 수 있다고 밝혔다. 노박 장관은 이날 현지 방송국 로시야1TV에 출연해 “국내 원유 생산업체 수장들을 만났다”며 이같이 말했다. 압둘아지즈 빈 살만 사우디 에너지장관은 국제에너지기구(IEA) 콘퍼런스콜에서 “효과적인 원유 감축량은 하루당 약 1950만배럴”이라고 주장했다. 압둘아지즈 장관은 OPEC+가 합의한 원유 감축량과 다른 주요 20개국(G20) 국가들의 비축유 구매 등을 고려했을 때 효과적인 감축량은 하루 1950만배럴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다른 나라들도 산유량에 비례해 일괄적으로 감축에 나선다면 사우디 또한 합의된 감축량인 하루 850만배럴 이하로 산유량을 줄일 수 있다고 언급했다.

앞서 러시아 크렘린(대통령궁)은 4월10일 주요 산유국 모임인 석유수출국기구 플러스(OPEC+)가 원유 감산을 합의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밝혔다. 타스통신에 따르면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 대변인은 이날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러시아 정부가 새로운 OPEC+ 합의 달성이 가능하다고 여기냐는 질문을 받고 “물론이다”라고 답했다. 그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OPEC+ 형식 안에서의 감산 합의를 긍정적으로 평가한다고 전했다. 페스코프 대변인은 “러시아 정부는 멕시코 측이 취한 건설적 입장 역시 긍정적으로 평가한다”며 “이제 총 23개 참여국의 타협에 관해 얘기할 수 있다. 우리 모두 이번 일이 국제 에너지 시장에 긍정적 효과와 안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확신한다”고 말했다. 멕시코의 안드레스 마누엘 로페스 오브라도르 대통령은 이날 앞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원유 감산을 합의했다고 밝혔다. OPEC과 OPEC 비회원 산유국 연합체인 OPEC+는 전날 긴급 화상회의를 열어 국제유가 안정화 방안을 논의했다. 그러나 멕시코가 자국에 요청된 일일 40만 배럴 감산을 거부하면서 최종 합의가 무산됐다. 오브라도르 멕시코 대통령은 OPEC+가 추후 35만 배럴 감산을 요구해 왔다며, 멕시코가 일일 10만 배럴을 감산하고 미국이 이미 합의한 양에서 하루 25만 배럴을 추가로 줄이기로 했다고 밝혔다.

산유국 감산합의 이틀 만에 또다시 유가 하락
국제유가가 석유수출국기구(OPEC)와 OPEC 비회원 산유국 연합체인 OPEC+의 감산 합의에도 20달러 선이 붕괴됐다. 미국 원유 재고 증가와 세게 석유수요 전망이 하향 조정된 데 따른 것이다. 업계와 외신에 따르면 지난 4월15일 뉴욕상업거래소(NYMEX)의 미국 서부텍사스산원유(WTI)는 전일 대비 배럴당 1.2%(0.24달러) 하락한 19.87달러에 거래를 마쳤다. 유가가 20달러 밑으로 하락한 것은 지난 2002년2월 이후 약 18년 만이다. 유럽거래소(ICE)의 브렌트유(Brent)는 전일 대비 배럴당 1.91달러 미끄러진 27.69달러에 장을 마감했다. 중동 두바이유(Dubai)는 전일 대비 배럴당 1.98달러 폭락한 19.68달러로 집계됐다. 앞서 OPEC+는 지난 4월12일 긴급 화상회의를 통해 5월부터 6월말까지 두달간 하루 970만 배럴 감산에 합의했다. 이들은 지난 3월 초부터 코로나19으로 인한 수요 감소 속에서 유가 안정을 위한 감산논의에 나섰지만, 사우디와 러시아의 치킨게임 등으로 난항을 겪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사우디와 멕시코의 협상 교착 상태를 해결하기 위해 개입해 가까스로 원유감산에 합의했지만, 정작 시장에서는 수요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에는 역부족이라는 지적을 내놓고 있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4월 하루 원유 수요가 2천900만 배럴 줄어들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더욱이 미국 내 원유재고는 쌓이면서 유가하락을 부채질하고 있다. 미 에너지정보청(EIA)에 따르면 지난 4월10일 기준 미국 원유재고는 5억 배럴을 넘어섰다. 사우디 에너지부 장관 등이 IEA 차원에서 전략비축유 구매 계획을 발표할 것이라고 밝혔지만, 관련 발표는 아직 나오지 않고 있다. 코로나19발 글로벌 경기침체가 가시화되면서 저유가 국면은 앞으로 수년 동안 지속될 가능성이 커졌다. 컨설팅업체 오안다는 석유 수요가 2022년까지 평상시 수준을 회복하지 못할 거라고 내다봤다. 국제통화기금(IMF)도 전 세계적 경제침체로 석유 수요가 계속해서 낮은 수준으로 유지되면서 유가가 2023년까지는 배럴당 43달러를 넘지 못할 것이라고 전날 보고서에서 전망했다. 저유가로 인한 충격은 국내 산업계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칠 것으로 보인다. 정제마진 하락으로 국내 정유사들은 올해 연간 대규모 적자를 기록할 것으로 예상되며, 조선업계에서도 원유 운반선과 각종 플랜트 등의 수주 부진이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다만 한국 등 석유 소비국이 저유가로 원가절감 등 반사이익을 볼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IMF는 “석유 관련 비용이 급격히 하락하면 석유 소비국들에는 활력을 불어넣을 수도 있다”고 밝혔다. NM

이종서 기자 jslee@newsmaker.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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