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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주의 생태주의 건강 성생활

기사승인 2024.04.02  13:3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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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시토신이 부족한 시대에 대하여   

우리 몸은 체내에서 생성되는 1백 가지 이상의 호르몬에 의해 뇌로부터 나오는 신호를 전달받고 그 명령에 따라 반응하며 움직이고 변화한다. 몸이 하나의 정밀한 기계라면, 거기에 생리적 활동을 통해 생물로서의 특성을 갖게 하는 것이 호르몬이라 할 수 있다. 호르몬이 생리활성물질이라 불리는 이유다.

호르몬은 감정에 의해 분비되고 활성화되는데, 다시 그 호르몬이 감정에도 작용하여 같은 감정이 고조되거나 진정된다.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관계인 것이다. 인간의 오욕칠정(五慾七情)이 모두 호르몬을 불러일으키고 호르몬은 그 욕망과 감정이 그에 맞는 행동으로 옮겨지는 데 관여한다. 

어떤 여자와 남자가 적절한 파티모임에서 만나는 상황을 가정해보자. 두 사람 다 짝을 찾을 나이이고 얼마든지 그럴 수 있는 여건이라면, 그들은 모임에 참석한 모든 이성에게 가능성을 열어두고 파티를 즐기려 할 것이다. 즐거운 파티 분위기는 참석자들의 기분을 좋게 만들고 적절한 조명과 곁들여진 와인의 작용은 더욱 더 참석자들의 기분을 고조시킨다. 엔돌핀 종류의 호르몬들이 솟아나와 어떤 사람은 평소에 자제했던 유머감각이 튀어나오고, 어떤 사람은 조심성이나 소심함을 벗어나 피아노를 두드리거나 노래를 부르거나 춤을 추기도 한다. 모두 쾌감과 용기의 호르몬이 작용하기 때문이다. 분위기는 한껏 고조된다. 누군가 작심하고 분위기를 해치거나 정전으로 음악이 끊어지거나 얼마 안 되는 술이 떨어지거나 때아닌 강풍에 천정이 뜯겨나가지 않는 이상, 파티는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이어질 수 있다. 그 사이에 이성에게 잘 보이기 위한 여성호르몬과 남성호르몬이 참석자 개개인 모두에게서 활성화된다. 

그 때 한 잔 와인에 가슴의 따뜻해진 여자의 눈에 잘 생긴 남자 하나가 들어온다. 남자도 힐끗힐끗 그녀를 훔쳐보고 있다(그녀의 착각일 지도 모르지만). 누군가가 소개하지 않더라도 두 사람은 어느새 우연인 척 가까운 거리로 다가가 서로 인사를 나눈다. 마주치는 눈길이 이미 뜨겁다. 여기에도 서로를 호의적으로 바라보게 만드는 도파민이 작용한다. 도파민은 상대에 대한 환상을 부추기고, 서로 실망시키지만 않는다면 시나브로 눈에 ‘콩깍지’를 씌우는 호르몬(흔히 ‘페닐에틸아민’이라 부르는)을 유발한다. ‘내가 딱 좋은 배필감을 만났구나’하는 감정을 갖게 만드는 것이다. 

관계가 잘 진전되어 동침에 이르렀다 치자. 속으로는 뒷일에 대한 계산도 어느 정도 작용할 터인데, 이 계산을 잘 하는 검열관의 성격은 사람마다 다르다. 꼼꼼한 계산으로 적당히 선을 긋고 헤어지든지 ‘딱 좋다’는 판단에 이끌려 생각보다 빠르게 침실로 가든지, 여기에는 개인차가 있다. 
어쨌든 두 남녀가 본격적으로 사랑을 구체화했을 때, 다음으로 감정을 지배하는 호르몬은 흔히 옥시토신이다. 사랑 호르몬의 일종인 옥시토신은 특히 ‘모성(母性)의 호르몬’ 또는 ‘연대의 호르몬’이라 불린다. ‘모성호르몬’이라는 말은 여성의 임신 출산 육아에 직접 관여하는 작용 때문이고, ‘연대의 호르몬’이라는 말은 책임감, 연대감, 보호본능 같은 사회적 유대감을 일으키는 작용 때문이다. 사랑을 나눈 뒤에 앞으로도 관계를 계속 유지하고 싶다거나, 이제 내 여자 혹은 내 남자로 믿고 싶어 한다거나, 함께 살거나 그의 아이를 갖고 싶다거나 하는 감정도 강력한 옥시토신의 작용으로 일어난다. 종종 옥시토신이 잘 활성화되지 않는 사람들도 있는데, 그의 섹스욕망은 사랑과 연대의 감정보다는 단지 정복이나 소유의 욕망과 연관되어 일어난다고 볼 수 있다. 그들은 관계는 갖더라도 서로에게 얽매일 생각은 결코 없으며, 더더구나 결혼이나 임신은 절대로 생각하고 싶지 않다는 태도를 나타낸다.  
  
이야기를 좀 다른 방향으로 진전시키자면, 이 부분에서 우리는 ‘옥시토신이 부족한 사회’를 떠올릴 수 있다. 서로에게 반한 남녀사이에 옥시토신이 불러일으키는 감정은 자연스럽게 우리가 전통적으로 유지해온 가족과 사회단위의 질서와 결속을 유지하는 데 기여해왔다. 함께 있고 싶다는 욕망이 결혼의 동기를 유발하고, 공동의 아이를 갖고 싶다는 욕망이 출산과 자녀에 대한 책임감을 유발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제 결혼도 출산도 기피하거나 저절로 진전시키지 못하는 요즘 성인사회의 모습은 옥시토신이 부족하거나 제대로 작용하지 않는 시대상에 다름 아니다. 옥시토신이 부족하니 성욕도 그만큼 메말라 있을 것이다. 한 마디로 무미건조한 사회가 되었다. 

그동안 발표된 연구에 따르면 옥시토신은 관계를 가질 때의 오르가즘 뿐 아니라 모성행동, 부부관계나 자녀에 대한 책임감, 유대감에 관여한다. 그것이 부족하면 자폐증, 불안, 내집단 편향 등의 특성이 일어난다. 배타적이고 폐쇄적인 성질이 강화된다는 의미다. 이것이 현 시점, 우리 사회의 특징적 현상들과 거의 들어맞는 걸 보니 옥시토신 부족은 더욱 개연성이 있다. 

인공적인 합성 옥시토신 말고, 사회적으로 옥시토신 현상을 촉진하거나 부활시킬 방법은 있을까. 연구자들은 음악을 함께 듣고 연주할 때 옥시토신 수치가 증가되고 유대감은 커진다고 말한다(행진곡이나 군가, 노동요를 합창하는 집단의 단결력과 노동효율이 강화되는 현상이 연상된다). 또 한 가지, 이것은 좀 슬프면서도 희망적인 얘기다. 외로운 마음이 커질 때에도 역설적으로 옥시토신 분비가 늘어난다고 한다. 바로 그리움이다. 사랑이 메말라 외로움이 커진 사람들의 사회가 다시, 그 때문에 분비되는 옥시토신의 작용을 기대할 수 있다는 건 구원 같은 소리다. 이 옥시토신의 작용으로 남을 배려하고 서로를 지지하며 신뢰와 책임감을 회복하는 ‘기적’이 지금 우리 사회와 나아가 국제사회에서 현실이 될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NM

▲ 이은주 한의사

   [이은주 대화당한의원, 한국밝은성연구소 원장]  

이은주 한의사 webmaster@newsmaker.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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