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지금 격변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세계 곳곳에서 문명 갈등은 확산되고, 냉전시기 잠복된 충돌과 경쟁이 다시 치열해지고 있다. 이제는 냉전 이후 잠시 잊혔던 ‘지정학의 부활’, ‘강대국 각축의 정글’, ‘신냉전’이라는 단어가 다시금 회자되고 있다. 김흥규 교수는 이 격변의 시대를 관통하는 국제정치학자이다.
황인상 기자 his@
21세기 들어 국제정치경제 질서는 우리가 과거 익숙하게 받아들여 왔던 미국의 자유주의적 패권이라는 안정적 패러다임이 무너지고, 훨씬 더 복잡하고 예측하기 어려운 형태로 진화하고 있다. 이에 김흥규 아주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한국의 향후 생존전략으로서 민주·민생·공화·평화의 원칙을 확립하고, 국민공감대에 기반한 초당적 대외전략 수립, 다자협력과 중견국 외교 활성화, 평화를 중시하는 구상, 경제안보 전략의 통합 필요성 등을 주장한다. 김흥규 교수를 만나 자세한 얘기를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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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흥규 교수 |
미중 전략경쟁 시대 대비하고자 (사)플라자프로젝트 설립
김흥규 교수는 “오늘날 전 세계는 ‘미중전략경쟁(US-China Strategic Competition)’이라는 거대한 패러다임의 전환에 직면해 있다”면서 “미중 전략경쟁은 무역, 기술, 금융, 외교, 규범, 가치, 심지어 문화영역까지 번지고 있다”고 말한다. 김흥규 교수에 의하면 기존 패권질서는 자유무역, 개방경제, 민주주의·인권 등 서구적 규범에 기초했으며, 미국이 군사력, 경제력, 제도적 리더십을 통해 이를 뒷받침했다. 그러나 중국이 예상보다 빠른 산업화와 기술혁신을 바탕으로 경제규모, 공급망 장악력, 기술표준 경쟁력, 인프라 개발 역량을 축적하고, 개발도상국·신흥국들도 대안적 발전모델을 추구하면서, 기존의 단극적·서구적 질서의 권위는 크게 도전받고 있다. 김 교수는 “미국 자유주의 패권질서의 쇠퇴와 미중 전략경쟁의 발발로 인해, 세계는 다시 각축과 혼돈으로 빠져들고 있다. 심지어 ‘미국’ 없는 격변의 세계 한복판에 한국이 내던져질 수도 있는 정세가 열리고 있다”면서 “기존의 단순한 선 긋기식 전략에서는 답을 찾기 어렵고, 지정·지경학적 사고로의 전환, 국민공감대 기반 전략수립, 민주·민생·공화·평화의 원칙의 강조, 다자적·협력적 대외전략을 추구할 것”을 강조한다. 격변의 시대에 대처하기 위하여 김흥규 교수가 초당파 싱크탱크인 (사)플라자프로젝트를 설립하였다. 플라자 프로젝트는 2018년 당시 본격적으로 다가오는 미중 전략경쟁 시대에 당파를 넘어선 국가전략을 준비해야겠다는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전문가 세미나 모임을 발족한 것이 시작이다.
지난 2024년 국회 정식 등록단체가 된 플라자 프로젝트는 현재 전문가 세미나 회원 120여명, 국회보좌관과 기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미디어 세미나 회원 110여명의 두 축을 중심으로 구성되고 매월 온·오프라인 세미나를 개최하고 있다. 지난해에도 6월 국회에서 한국의 핵무장 가능성 세미나, 9월 한일관계 세미나에 이어 11월에는 Korea Herold와 국회에서 공동으로 미대선 후 한미 동맹과 경제전망 세미나를 개최, 현 상황 진단은 물론 국익을 최우선으로 하는 실천적 방안이 진지하게 논의했다. 국제정세는 트럼프의 등장으로 지난 80여년간 국제적 안정과 평화를 유지하는 데 기여한 ‘주권과 영토 존중의 원칙’ 자체가 크게 흔들이고 있다. 4강과 북한에 둘러싸인 한국에게는 엄청난 도전이다. 보다 치밀한 준비가 필요하다. 김흥규 교수는 “트럼프의 재등장으로 미국은 물론이고 세계가 다시 한 번 중대한 전환점을 맞을 것이다”면서 “이제 단순한 진영논리나 이분법적 사고를 넘는 새로운 전략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트럼프 美 대통령, 한국에 대대적 압박 가할 것”
김흥규 교수는 “오늘날 한국은 미중 전략경쟁 사이에서 동네북, 파쇄지대가 되느냐, 또는 가교국가 또는 평화번영 중추 국가가 되느냐의 갈림길에 있다”면서 “세계는 미국 중심의 서방, 중국과 러시아 중심의 동방, 제3세계의 남방으로 분열돼 있지만 내면에는 더욱 복잡다단한 이합집산과 다차원적 수 싸움이 전개되고 있다”고 말한다. “미래 국제정치는 대단히 불안정하고, 미중 전략경쟁의 향배는 불확실하다. 보다 유연한 태도로 모든 상황에 대한 대비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김 교수는 미 트럼프 행정부 하에서 우리는 더욱 강화된 무역 압박과 동맹 분담금 증액 요구, 핵심 산업의 리쇼어링 문제, 대북정책·대중전략에 대한 조정을 요구받을 개연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향후 세계 경제는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강화정책으로 인해 상당한 파동을 겪을 것으로 예상되는데 우리 경제에도 큰 도전이 될 것”이라 하였다. 다만, “미국은 우리에게 외교, 안보, 경제적으로 가장 중요한 국가로 남을 수밖에 없는 구조다. 트럼프와 어떻게든 잘 지내는 방법을 찾아내야 한다”며 “거래주의적 관점에서 우리도 우리가 가져올 수 있는 것과 줄 수 있는 게 뭔지 정교하게 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대중국 관계의 해법을 찾는 것도 대단히 절박한 과제이다. 당장은 일본과의 협력관계를 잘 유지하고, 러시아와 적대적인 관계로의 전환하는 것은 지양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대한민국은 평화가 중요하다. 그리고 기존의 동맹 의존적 사고는 새로운 시대적 도전 앞에 해법이 아니다”고 진단한다.
김 교수는 대안으로 자강의식을 중심으로 한 새로운 사고와 동맹 및 국제 연대를 어떻게 결합하여 대외관계 좌표를 만들지를 심사숙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근 방영된 <KBS 쌤과 함께>라는 프로그램 200회 특집에서 '대한민국의 생존 전략' 강연으로 큰 반향을 일으킨 바 있는 김흥규 교수는 서울대 외교학과를 졸업한 후 미국 미시간대학교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외교부 외교안보연구원(현 국립연구원) 교수를 거쳐 아주대 미중정책연구소장 겸 정치외교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청와대 국가안보실/외교수석실 정책자문위원, 대통령 직속 정책기획위원회 외교소분과 위원장, 외교부 혁신위원회 위원장, 국방부, 육군, 해군의 정책자문위원을 역임했으며, 문재인 정부 초기에는 국방개혁 2.0 수립에도 관여했다. 국내에서는 드물게, 중국은 물론이고 미국 워싱톤과의 네트워크도 동시에 강한 미중관계 전문가로 알려져 있다. 2014년 외교안보 부문 학술상을 받았고, 미중관계, 중국 외교안보, 북중/북핵문제 등을 중심으로 300여 편 이상의 논문, 연구보고서, 기고문 등이 있다. 저서로는 2008년 문광부 추천 우수학술도서에 선정된 <중국의 정책결정과 중앙-지방관계>, <신국제질서와 한국외교전략 (2021)>등이 있으며, 역서로는 <현대중국의 이해> 등이 있다. N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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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인상 전문기자 his@newsmaker.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