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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화이트리스트에서 한국 제외

기사승인 2019.09.05  16:0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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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정부도 일본을 수출 우대국에서 제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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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7일 일본은 한국을 ‘화이트리스트(백색국가·수출심사 우대국)’에서 빼면서 시행세칙인 ‘포괄허가취급요령’도 함께 개정했다. 기존 ‘백색국가’와 ‘비(非)백색국가’ 구분을 없애고 수출 대상국을 A·B·C·D 4개 그룹으로 재분류하는 게 주요 내용이다.

장정미 기자 haiyap@

A그룹은 기존의 백색국가로, 미국 영국 프랑스 호주 등 26개국이 해당한다. 백색국가였던 한국은 개정안이 시행된 8월28일부터 B그룹으로 편입됐다. B그룹은 4대 수출통제체제에 가입해 일정요건을 맞춘 국가인데, 일본 정부는 한국 외에 다른 어떤 국가가 포함되는지는 명시하지 않았다. D그룹은 이란, 이라크, 북한 등 유엔 무기금수 10개국이 해당한다. C그룹은 싱가포르, 대만 등 A·B·D 그룹에 속하지 않는 나라다. D그룹으로 갈수록 수출관리 신뢰도가 낮은 만큼 통제 수준도 강화된다.

日, 포괄허가취급요령도 함께 개정
8월28일부터 일본 기업이 B그룹인 한국으로 전략물자를 수출할 때 일반포괄허가를 받을 수 없게 됐다. 원칙적으로 개별허가를 받아야 한다. 일반포괄허가를 적용받으면 다수 수출 건에 대해 3년마다 수출심사를 받으면 됐지만 앞으로는 수출 건별로 통상 6개월마다 새로 심사를 받아야 한다. 이밖에도 처리기간이 1주일 이내에서 90일 이내로 길어지고, 필요한 신청서류도 늘어나는 등 수출 절차가 전반적으로 까다로워진다. 또 비전략물자라도 대량파괴무기(WMD) 등으로 전용될 우려가 있다고 판단되면 캐치올(Catch all·상황허가) 통제를 받아 별도 수출허가를 받아야 한다. 백색국가는 캐치올 통제를 받지 않는다. 일본 정부가 백색국가 명칭을 없애고 수출관리 대상국을 재분류 한 것은 분쟁 가능성을 선제적으로 차단하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일본은 2004년부터 한국을 백색국가로 지정해 왔고, 백색국가에서 특정국을 제외했던 사례가 없다. 따라서 강제징용 배상 판결 등 정치적 이유로 한국을 백색국가에서 뺀다는 비판을 받아 왔는데, 수출통제 대상국을 세분화해 이를 피할 수 있다고 판단했을 가능성이 있다. 일본은 백색국가 배제는 보복 조치가 아니라 수출 관리제도 강화를 위한 것이라고 강조해 왔다. 8월28일 이후에도 ‘자율준수무역거래자(ICP기업·Internal Compliance Program)’에 적용하던 특별일반포괄허가는 계속 허용된다. 기존에 받았던 특별일반포괄허가도 효력을 유지한다. ICP기업이란 일본 정부가 무기개발 등에 사용 가능한 ‘전략물자’ 관리에 관한 자율능력이 있다고 인정한 기업이다. 이들 기업이 특별일반포괄허가를 받으면 백색국가 배제 이전과 사실상 동일한 효과를 누릴 수 있다. 국제통상 전문가인 송기호 변호사(전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국제통상위원장)는 “국내 대기업의 일본 공급선은 거의 100% 특별일반포괄허가증을 보유하고 있어 공급에 문제가 없을 것”이라며 “허가증이 없는 일본 공급선과 거래하는 중소기업은 공급선 점검 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 “일본에 반드시 승리 거둘 것”
문재인 대통령이 ‘맞불 대응’을 앞세우며 일본에 반드시 승리를 거두겠다고 국민에게 약속했다. 일본의 ‘화이트리스트(백색국가, 수출 심사 우대 대상) 제외’를 사실상 선전포고, 경제왜란으로 받아들인 것으로 해석된다. 문 대통령이 8월2일 일본의 화이트리스트 제외 조치 직후 개최된 긴급 국무회의에서 강조한 단어는 ‘승리’다. “다시는 일본에게 지지 않는다”, “극복할 역량이 있다”, “도약의 기회”, “일본 경제를 뛰어넘을 수 있다”, “승리의 역사를 만들겠다”는 메시지들이 쏟아졌다. 승리를 강조했다는 것은 현 상황을 사실상 ‘경제 전쟁’으로 인식한다는 의미다. 문 대통령은 일본의 이번 조치와 관련해 “우리 경제를 공격하고 우리 경제의 미래성장을 가로막아 타격을 가하겠다는 분명한 의도를 가지고 있다”고 언급했다. “물러서면 곧 패배”라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실제 청와대 안팎에서는 지난 7월 일본의 반도체 소재 수출 규제 이후 이같은 분위기가 굳게 형성돼 왔다. 그리고 이런 ‘극일(克日)’의 분위기가 문 대통령의 메시지로 강하게 표출된 것이다.

문 대통령은 “도전에 굴복하면 역사는 또 다시 반복된다. 지금의 도전을 오히려 기회로 여기고 새로운 경제 도약의 계기로 삼는다면 우리는 충분히 일본을 이겨낼 수 있다”며 “언젠가는 넘어야 할 산이다. 지금 이 자리에서 멈춰 선다면, 영원히 산을 넘을 수 없다”고 말했다. 승산이 충분하다는 판단이 깔렸다. 문 대통령은 “앞으로 벌어질 사태의 책임도 전적으로 일본 정부에 있다. 일본도 큰 피해를 감수해야 할 것”이라고 자신감을 피력했다. 우리 경제가 일본의 경제 공격을 버틸 정도로 기초가 탄탄하다는 분석이다. 문 대통령은 “오늘의 대한민국은 과거의 대한민국이 아니다. 국민의 민주 역량은 세계 최고 수준이며, 경제도 비할 바 없이 성장하였다”며 “어떠한 어려움도 충분히 극복할 저력을 가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국제 여론이 일본의 편이 아니라는 판단이다. 문 대통령은 일본이 ▲미국의 중재를 거부했고 ▲국제법의 대원칙을 위반했으며 ▲자유무역질서를 스스로 부정했고 ▲세계 경제에 큰 피해를 끼치는 이기적인 민폐 행위를 저질렀다고 지적하며 “일본이 (과거의) 상처를 헤집는다면, 국제사회가 결코 용인하지 않을 것”이라고 힘을 줬다. 대응책도 마련했다고 밝혔다. 문 대통령은 “일본의 부당한 경제보복 조치에 대해 상응하는 조치를 단호하게 취해 나갈 것”이라며 “맞대응할 수 있는 방안들을 가지고 있다. 단계적으로 대응조치를 강화해 나갈 것”이라고 했다. 지난 8월15일에는 “일본이 대화와 협력의 길로 나온다면 우리는 기꺼이 손을 잡을 것”이라며 동아시아 공동 번영을 위한 일본의 역할을 촉구했다. 또 일본의 경제보복을 계기로 마주한 한국 경제의 취약성을 극복하기 위해 ‘아무도 흔들 수 없는 나라’의 기틀을 다지겠다며 3대 경제구상을 밝혔다.

문 대통령은 이날 충남 천안 독립기념관에서 열린 제74주년 광복절 경축사에서 “일본이 이웃나라에 불행을 준 과거를 성찰하는 가운데 동아시아의 평화와 번영을 함께 이끌어가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한·일 관계가 사상 최악으로 치닫고 있는 상황에서 이번 광복절 경축사에 대한 국내외 관심은 그 어느 때보다 높았다. 문 대통령은 ‘위안부’ ‘강제징용’ 등의 표현을 일절 삼간 채 일본에 미래지향적 역할을 당부했다. 문 대통령은 “자유무역의 질서 속에 분업을 통해 성장한 나라가 뒤따라 성장하는 나라의 사다리를 걷어차서는 안 된다”며 일본의 경제보복을 우회적으로 지적했다. 그러면서도 “평창에서 평화의 한반도를 봤듯이 도쿄올림픽에서 우호와 협력의 희망을 갖기를 바란다”고 했다.

이낙연 총리 “일본의 경제공격은 부당한 처사”
이낙연 국무총리는 8월8일 일본 정부가 우리나라를 수출우대국 명단인 화이트리스트(백색국가)에서 제외한 조치에 대해 “일본의 한국에 대한 경제공격은 세계지도국가답지 않은 부당한 처사이며, 자유무역의 최대수혜국으로서 자기모순”이라고 일본을 강하게 비난했다. 이 총리는 이날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국정현안점검조정회의를 주재하면서 “일본정부는 한국 반도체와 디스플레이에 필수적인 3개 품목의 수출을 규제한 데 이어, 한국을 수출심사 우대국가, 즉 백색국가에서 제외했다”며 이같이 밝혔다. 이 총리는 “우리는 일본의 경제공격이 원상회복되도록 외교적 노력을 강화할 것”이라며 “동시에 소재부품의 국산화를 포함한 특정국가 과잉의존의 해소 및 대기업과 중소·중견기업의 협력적 분업체제 구축을 위한 정책을 꾸준히 이행해 갈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은 전날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에서 제외하고 일반국가로 전환한다는 내용이 담긴 수출무역관리형 개정안을 공포했다. 이에 따라 일본 기업 등이 군사전용이 가능한 규제 품목을 한국에 수출할 경우 8월28일부터는 3년간 유효한 일반포괄허가를 받을 수 없게 되는 등 수출 절차가 한층 까다롭게 됐다. 이 총리는 “다만 어제 일본정부는 백색국가 제외 시행세칙을 발표하면서 기존 3개 품목 이외의 규제품목을 지정하지 않았다”면서 “수출규제 3개 품목의 하나인 EUV 포토레지스트의 한국 수출을 처음으로 허가했다”고 밝혔다.

또한 이 총리는 “밤길이 두려운 것은 잘 보이지 않기 때문”이라며 “경제의 가장 큰 부담은 불확실성”이라고 강조했다. 이 총리는 이어 “업계가 느끼는 불확실성과 그에 따르는 불안을 최소화하도록 정부는 업계와 부단히 소통하면서 모든 관심사를 최대한 설명해 드릴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날 국정현안점검조정회의에서는 우리 정부가 일본을 화이트리스트에서 제외하는 내용이 담긴 전략물자 수출입제도 변경 안건 등 일본 수출규제관련 범정부 대응상황 점검을 비공개로 논의했다. 대표적인 ‘지일(知日)’파로 대일특사로까지 거론되고 있는 이 총리가 일본에 대해 비난 수위를 높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 총리는 동아일보 기자시절 일본 도쿄 특파원을 거쳤고, 국회의원 시절 한일의원연맹의 간사장, 수석부회장 등을 역임했다. 한편 김상조 청와대 정책실장은 8월9일 한국의 ‘백색국가’(화이트리스트)에서 일본을 제외하는 방안과 관련해 “(정부가 이를) 중단한 것은 아니다. 조금 더 검토할 사항이 있는 것뿐”이라고 말했다. 김 실장은 이날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정부가 잠시 검토를 위해 보류를 한 것이라고 설명하면서 “다시 논의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앞서 정부는 전날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관계장관회의 및 국정현안점검조정회의에서 해당 안건을 논의했으나 최종 발표는 하지 않았고, 일각에서는 정부가 이 조치를 중단한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왔다. 김 실장은 일본 경제산업성(경산성)이 지난 7월4일 한국에 대한 수출규제를 강화한 이후 규제 강화 품목 가운데 1건에 대해 첫 수출 허가를 내준 배경에 대해서도 “우리가 일본을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했을 때에 대비해 명분을 축적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 실장은 “일본은 대만이나 중국 등에도 통상 4주에서 6주 만에 수출 허가를 내준다. 한국에 지금까지 줬던 특혜를 거둬들이고 정상적 절차에 들어갔다는 주장을 일본이 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김 실장은 일본이 백색국가 배제 조치 시행 일자를 8월28일로 설정한 것에 대해서도 “그 앞에 우리가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연장 여부를 결정해야 하기 때문에 (그 날짜로 정한 것)”이라며 “28일에 앞서 한국이 지소미아를 어떻게 하는지 보겠다는 뜻”이라고 예상했다. 김 실장은 지소미아 연장 여부에 대해서는 “동북아의 안보는 매우 중요한 사안이다. 기본적으로는 유지되어야 한다는 입장을 원칙적으로 갖고 있지만, 상황에 따라서는 여러 가지 요소들을 고려해야 한다”면서 “아직 아무것도 결정된 것은 없다”고 했다. 김 실장은 ‘지소미아를 연장하면 일본이 백색국가 배제 조치를 철회할 수 있는 것인가’라는 질문에는 “세상이 그렇게 단순하지는 않다”고 답했고, ‘8월 중 사태 해결 가능성이 있느냐’라는 물음에도 “그렇게 낙관적이지 않다”고 말했다.

산업부, 전략물자 수출입고시 개정안 행정예고
지난 8월14일 산업통상자원부가 일본을 수출 심사 우대국에서 제외하기 위한 ‘전략물자 수출입고시’ 개정안을 행정예고했다. 이날 산업부는 국민참여입법센터에 ‘전략물자 수출입고시’ 행정예고 공고안을 게시하고 오는 9월3일까지 개정안에 대한 의견을 받는다고 밝혔다. 공고안을 보면 산업부는 개정 이유에 대해 “국제 수출통제체제의 기본 원칙에 어긋나게 제도를 운영하고 있거나 부적절한 운영사례가 지속적으로 발생하는 등 국제 공조가 어려운 국가에 대해 전략물자 수출지역 구분을 변경해 수출관리를 강화하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번 개정안에는 현재 전략물자 수출지역 가운데 ‘가’ 지역을 ‘가의1’ 지역과 ‘가의2’ 지역으로 세분화하는 내용이 담겼다. 수출 심사 우대국에 해당하는 ‘가의1’ 지역에는 미국과 영국, 독일 등 28개국이 포함된다. 기존에 ‘가’지역으로 분류됐던 일본은 ‘가의2’ 지역으로 새로 들어간다. 현재 ‘가의2’ 지역으로 분류된 나라는 일본 한 곳뿐이다. 이외에 국가는 ‘나’ 지역으로 분류된다. 정부는 4대 국제수출통제 가입국 가운데 기본 원칙에 맞지 않게 제도를 운용하지 않은 나라를 ‘가의2’ 지역으로 넣겠다는 방침이다. ‘가의2’ 지역에 대한 수출통제 수준은 원칙적으로 ‘나’ 지역의 수준을 적용하게 된다. 예를 들어 자율준수기업(CP)에 내주고 있는 사용자포괄허가의 경우 ‘가의1’ 지역에만 허용하고 ‘가의2’ 지역에는 예외적인 경우에 한해서만 허가를 내주는 식이다. 이런 예외적인 허용은 동일 구매자에게 2년간 3회 이상 반복 수출하거나 2년 이상 장기 수출계약을 맺어야 가능하다. 개별수출허가의 경우 제출서류가 ‘가의2’ 지역은 5종이 필요하다. 이는 ‘가의1’ 지역의 3종보다 많다. 일본으로 수출하려는 기업은 기본 서류인 신청서와 전략물자 판정서, 영업증명서에 추가로 최종수하인 진술서, 최종사용자 서약서를 내야 한다. 개별허가 심사 기간도 ‘가의1’ 지역은 5일 이내이지만 ‘가의2’ 지역은 15일 내로 늘어나면서 보다 엄격한 기준을 적용받게 된다. 산업부는 매년 1회 이상 ‘전략물자 수출입고시’를 개정해 왔다. 이번 개정안 역시 통상적인 절차에 따른 것으로 최근 일본과의 경제갈등 국면과는 무관하다고 설명했다. 단체 또는 개인은 국민참여입법센터 홈페이지를 통해 온라인으로 이 개정안에 대한 의견을 보낼 수 있다. 우편과 팩스를 이용해 산업부에 의견서를 제출할 수도 있다. 의견서에는 예고사항에 대한 찬성 또는 반대 의견(반대 시 이유 명시)과 성명, 주소, 전화번호 등을 기재하면 된다.

한편 이날 정부와 야당이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일본 수출규제에 대한 세부적인 대응 방침을 두고 팽팽히 맞섰다. 정부가 일본을 수출 심사 우대국에서 제외하면서 세계무역기구(WTO) 제소에서 불리해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일부 의원은 100대 핵심 전략품목의 공개를 요구했지만 정부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날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전체회의에서 산업통상자원부와 중소벤처기업부는 국회에 일본 정부의 수출규제 강화조치 현황과 대응방안을 보고했다. 바른미래당 김관영 의원은 “이번 수출입고시 개정이 WTO 제소에서 우리의 논리가 관철되도록 하는 데 제약요인이 되지 않겠나”라고 의문을 제기했다. WTO 협정상 일방적인 대응조치는 국제사회에서 보복으로 비춰질 수 있다. 이러면 앞으로 있을 WTO 제소에서 우리에게 불리하게 적용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성윤모 산업부 장관은 “일본을 백색국가 제외하는 ‘전략물자 수출입고시’ 개정안은 세계무역기구(WTO) 규범에 어긋나지 않는다”며 “(일본을 백색국가에서 제외하는) 조치를 취하게 된 근본적인 이유와 근거는 일본과 확연히 다르다”고 말했다. 성 장관은 “일본은 처음부터 (강제징용 배상 판결에 대한) 대법원 판결을 이유로 경제적 보복조치를 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국제 전략물자 수출입제도는 기본 원칙인 국제 평화와 지역 안정이라는 제도 내에서 수출통제제도를 운영해야 한다”며 “여기에 어긋나기 때문에 일본을 수출 우대국에서 제외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관영 의원은 “WTO 제소와 관련해서 국제법과 국내법적으로 어떤 부분을 고려하고 있는지 설명해달라”고 말했다. 성 장관은 “절차에 따라 법적으로 필요한 협의와 의견수렴 절차를 거쳐 전략물자 수출입제도 개정을 검토해왔다”며 “일본이 수출통제제도를 제도 자체의 문제가 아닌 정치적인 이유로 개정했기 때문에 WTO에서도 확실하게 주장할 수 있다고 본다”고 전했다. 자유한국당 이종배 의원은 “(정부가 일본의 수출규제에 대응하기 위해 선정한) 100대 핵심 품목이 무엇인지 자료 요구를 했고 안 된다면 열람이라도 하게 해달라고 요청했는데 아무런 조치가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앞서 정부는 업계 의견과 전문가 검토를 거쳐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자동차, 전기전자, 기계·금속, 기초화학 등 6대 분야 100개 품목을 선정한 바 있다. 이 핵심 전략품목을 중심으로 연구개발(R&D) 투자에 나서고 공급 안정화도 추진한다는 방침이다. 성 장관은 “구체적 품목이나 기업 영업비밀 관련 사항은 비공개가 불가피하다”며 “국내 기업들도 거래처와의 부정적인 영향을 우려해 조심스러워 한다”고 설명했다. 자유한국당 장석춘 의원은 “정부가 100대 품목을 정했으면 민간기업에 알려줘야 대응할 수 있는 준비를 한다”고 재차 지적했다. 성 장관은 “자세한 품목에 대해서는 공개하지 않고 있다”며 “공급기업과 수요기업, 정부, 연구소 등이 함께 기술을 확보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한 정보를 공유하고 있다”고 답했다.

우리 정부, 소재·부품·장비산업 분야 육성
일각에서는 일본의 수출 규제 조치는 빠르게 성장하는 한국 산업의 발목을 잡기 위한 것이라는 분석이 제기되고 있다. 일본이 수출 규제에 나선 품목은 반도체나 디스플레이 생산공정에 필수 소재이면서 대일 의존도가 높다. 세계 메모리 반도체 시장에서 1위를 차지하고 있는 삼성전자를 겨냥했다는 의심을 받는 이유다. 삼성전자는 지난 4월 시스템 반도체에서도 2030년 1위를 차지할 수 있도록 133조원을 투자하겠다고 밝혔으나 일본의 ‘방해’로 계획에 차질이 우려되고 있다. 일본은 아직 규제 품목을 추가로 지정하지 않고 있다. 하지만 한국이 백색국가에서 제외되는 8월28일 이후에는 미래 먹거리 산업인 전기차나 수소차 소재를 겨냥해 탄소섬유 등의 수출을 막거나 지연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이처럼 일본이 소재 수출 규제로 한국을 위협할 수 있는 것은 우리나라 소재·부품·장비산업이 일본에 의존하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 위기가 재계·정부·과학계를 하나로 뭉치게 해 우리 경제의 일본 의존도를 줄이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긍정적 분석이 나오고 있다.

정부는 일본의 수출 규제에 맞서 100대 핵심 전략품목을 1∼5년 내 국내에서 공급하는 방안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기로 하고, 총 45조원에 이르는 예산·금융을 투입할 방침이다. 정부출연연구기관들은 소재·부품·장비산업 분야 기술지원단을 구성하고 출연연 보유기술 지원, 기술멘토링, 기업 수요기술 개발 등을 통해 100대 소재부품 기술기업을 육성하기로 했다. 카이스트(KAIST) 전·현직 교수진 100여명은 일본의 경제보복으로 곤란한 상황에 놓인 기업의 애로기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소재·부품·장비 기술자문단’을 꾸렸다. 현재까지 일본 정부가 3년에 한번 심사를 받으면 되는 일반 포괄허가에서 6개월마다 심사를 받아야 하는 개별허가로 수출 규제를 공식화한 소재는 고순도 불화수소, 반도체 EUV(극자외선) 공정용 포토레지스트(감광재), 플루오린 폴리이미드 등 3종이다. 고순도 불화수소는 반도체 기판인 실리콘웨이퍼에 그려진 회로도에 따라 기판을 깎아내는 식각 공정에 쓰이는 핵심소재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반도체 칩 핵심공정에 투입하는 불화수소는 순도 99.999% 이상의 일본산 소재가 대부분인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액체 불화수소보다 제조공정이나 보관이 어려운 기체 불화수소의 경우 일본 쇼와덴코에서 100% 수입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국내에선 솔브레인과 SK머티리얼즈가 생산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솔브레인은 9월 중 제2공장 증설을 마치면 연내에 일본산을 대체할 가능성이 높다. 솔브레인은 삼성전자 반도체 양산 라인에서 고순도 불화수소를 테스트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SK머티리얼즈도 지난 7월27일 “99.999% 이상의 고순도 불화수소 기술을 확보했다”며 “연말까지는 시제품 생산이 가능하다”고 밝혔다. SK머티리얼즈는 삼성전자·SK하이닉스와 연내 나올 시제품 테스트를 논의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디스플레이 소재인 플루오린폴리이미드의 경우 SKC와 코오롱인더스트리에서 생산 막바지 작업을 진행 중이다. SKC는 오는 10월 생산공장이 완공되면 연내 생산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코오롱인더스트리는 10월 생산라인 가동이 목표다. 가장 큰 문제로 지목되는 EUV 공정용 포토레지스트는 일본 JSR, 신에츠케미칼, 도쿄오카(TOK)에 거의 전적으로 의존하는 상황이다. 글로벌 반도체 제조사 가운데 최첨단 기술로 꼽히는 EUV 공정을 도입한 곳이 삼성전자와 대만의 TSMC 2개사에 그치기 때문에 관련 포토레지스트를 만드는 업체도 극소수에 불과하다. 국내에선 금호석유화학과 동진쎄미켐이 포토레지스트를 만들고 있지만 아직 기술 수준이 일본 업체에 미치지 못하는 상황이다. 금호석유화학 관계자는 “1990년대 초부터 포토레지스트 연구를 시작했는데 현재 국내 기술수준은 D램과 3D(3차원) 낸드플래시에 쓰이는 불화아르곤(ArF) 드라이 리소그래피에 대응 가능한 수준”이라며 “EUV 공정용 포토레지스트 개발까지는 최소 3년 정도가 걸릴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일본 정부는 지난 8월7일 신에츠케미칼이 삼성전자에 수출하기 위해 제출한 포토레지스트 수출 신청을 1건 허가했다. 현재 JSR이 벨기에 합작법인을 통해, 일본 도쿄오카공업(TOK)이 인천 송도 생산공장을 통해 각각 삼성전자에 우회 수출하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같은 EUV용 포토레지스트를 만들지만 해외법인이 없는 신에츠케미칼이 자국 경쟁사와의 형평성을 내세워 일본 정부를 설득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일본의 수출규제 사태는 반도체·디스플레이를 포함해 국내 산업의 정확한 수준을 진단하는 계기가 됐다는 평가다. 산업통상자원부가 지난 8월5일 발표한 ‘소재·부품·장비산업 경쟁력 강화대책’에 따르면 반도체 업종의 자체조달률은 27%, 디스플레이는 45%, 전기·전자산업은 63%, 자동차산업은 66% 수준으로 집계됐다. NM

 

장정미 기자 haiyap@newsmaker.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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